바람이 휩쓴 거리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뒹굴었다.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켜자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I am sailing~ I am sailing~ ( by 로드 스튜어트 )
창 밖의 바람 풍경과 울려 퍼지는 팝송 가락을 타고, 거친 파도의 일렁임처럼 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간밤엔 별일 없었건만. 평온한 일상이라 여겼건만. 지난 수십 년의 생애는 sailing도 crying도 dying도 함께 했음을 뜻하는 걸까. 갑작스레 눈시울이 뜨끈하니 촉촉해졌다.
그러고 보니 눈가에 눈물이 고여 본 게 얼마 만인가? 근래 수년간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나이 들며 탄력을 잃고 질긴 주름이 자리 잡는 건 피부만이 아닌가 보다. 희로애락의 감정 역시 탄력을 잃고 윤곽이 희미해져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말랑했던 감정의 표면은 굳은살처럼 질기고 두터워져서 좀처럼 눈물로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지도 않는다. 매일이 밋밋하다.
그런 내게 바람과 음악과 아침이 한꺼번에 밀려든 오늘, 모처럼 센티한 감정에 빠져 촉촉해진 순간이 엉뚱하게도 반갑고 뿌듯하다.
내 일터 학교 보건실은 아이들이 엎드려 우는 곳이기도 하다. 10대 아이들은 수시로 감정이 끓어오른다. 구르는 낙엽에도 까르르 터지는 웃음 못지않게, 여기저기서 수시로 눈물 폭탄이 터진다.
미영이는 늘 화가 나 있다. 쑥 내민 입과 내리깐 눈을 장착한 태세는 단단히 불만이 있어 보였다. 나는 나대로 속 좁게 못마땅해져서 ‘대체 뭐가 불만인 거니?’ 이런 맘으로 몇 차례 불편한 대면을 했었다.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난 미영이는 평소와 좀 달랐다. 화 난 듯한 표정은 여전하지만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커다란 눈망울 흰자위로 불거지는 혈관이 점점 빠르게 퍼졌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좀 쉴까?” 짧게 묻고 가장 구석진 침대에 아이를 눕혔다. 이불로 몸을 감싸 눈높이까지 올려주고 손에는 휴지 몇 장을 쥐어줬다. 조명은 낮추고 아이가 누운 침대는 파티션으로 가렸다. 울기에 딱 좋은 분위기가 되게끔.
“그럼 편히 울어.” 가벼운 인사만 덧붙이고 물러났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 알갱이가 눈물에 녹아 사라지길 바라면서.
잠시 후 일어난 미영이 얼굴은 퉁퉁 부었지만, 표정은 말갛게 가벼웠다. "이제 가볼게요." 하며 부스스한 머리를 추스른다. 나는 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물 한잔 먹이고 등 몇 번 토닥여 배웅했다. 그녀를 울렸던 삶터에 다시 들어설 용기를 내주니 일단, 다행이다.
좌절감에, 억울함에, 분노에, 수치심에 휩싸일 때 아이들은 얼굴을 감싸고 숨을 곳을 찾는다. 보건실 침대는 종종 아이들이 숨는 공간이다.
미영이가 내 곁에서 말없이 울었던 날, 나는 그제야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늘 화나 있던 표정은 그녀의 슬픈 마음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아이의 눈물은 나를 그녀의 진짜 속내에 눈뜨게 했다.
누군가 눈물짓는 공간에 함께 머무는 일도 내 직업적 업무 영역 안에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가끔은 어른들의 눈물도 만난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슬픔에 눈물지을 때면 치장을 걷어낸 그의 뜨거운 속내가 느껴진다.
눈물은 강력하다. 다만 옆에 있을 뿐인 나까지도 그 눈물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난다. 마침내 눈물을 씻고 말간 얼굴을 드러낼 때, 나도 실컷 울고 난 듯 다른 시선, 다른 생각으로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차마 울지 못한 채 마음을 억누르는 아이의 속울음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눈물은 말로 할 수 없음의 표현이다. 몇몇 예외의 경우를 빼면, 다그쳐 묻기보다 홀로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과 공간을 넉넉히 내주는 건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관계 안에서 사는 우리는 모두 사랑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소중한 사람 또는 사랑하는 내 아이가 세상에서 상처 받고 뛰쳐나왔을 때 내 곁으로 숨어들도록, 나에게는 넉넉하고 따스한 품이 있는가. 내가 눈물이 날 때 찾아가 안길 곳은 어디일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