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둥하던 내 컨디션도 첫눈이 주는 새롭고 반갑고 들뜬 기분을 기꺼이 붙잡는다. 모처럼 소복한 첫눈을 행여 놓칠세라 마음들이 부산하다. 어른들은 너그러워지고 아이들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뿌연 하늘에서 송이를 드러내고 땅으로 사라지기까지 시선으로 따라가 마음에 담는다. 사랑과 기쁨이 깊어지고 슬픔과 외로움도 위로가 될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생략>
‘자연이라는 우리를 둘러싼 이 공간이 있어 모두 함께할 수 있구나.’ 생각한다.
해와 달을 공유하고, 눈과 비를, 바람과 새를, 하늘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자연이 우리에게 말 걸어 주는 날.
사랑 담뿍 받는 어린아이가 된 듯, 마냥 즐겁고 평화롭다.
태양 아래서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이 첫눈 소식을 전하고 싶다.
-2019년 11월 첫눈 온 날 씀-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작년 이맘때, 첫눈 오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설레는 첫 눈발은 늘 아쉽게 끝나곤 했었는데, 그 해에는 모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10대 아이들의 들썩임은 견고하게 돌아가는 학교 시계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어느새 운동장엔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로 가득했고, 어른들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응시하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눈송이를 따라 하늘로 땅으로 시선을 그리던 나는 그때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던가?
며칠 전엔 세찬 비가 내렸다. 나무들의 화려한 가을 축제가 끝났다. 울긋불긋한 이파리를 고스란히 발아래로 떨구고, 앙상한 가지 끝에는 마지막 잎새를 남겼다.
따스한 모자와 장갑을 꺼내고 시린 목을 감싸는 계절이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과 모닥불이 그리워진다. 예전 같으면 한동안 소원했던 정다운 이들과 만남을 꿈꿀 시간이다. 추운 만큼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입김을 불어주는 계절이다. 겨울은 춥지만 따뜻했었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첫겨울. 병든 우리 삶은 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롭다. 자영업자인 친지는 다시 시작되는 영업정지에 한숨을 내쉰다. 폐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과 함께 사는 동생을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음 주 결혼을 앞둔 동료 직원은 시시각각 살얼음판을 걷는 모양새다.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다.
거리의 찬바람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계절의 서막을 알리는 듯하다. 모자를 쓰고 외투를 껴입어도 마음에는 한기가 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픈 마음이 당장에 이루지 못할 소망이 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게 이런 걸까? 예상치 못한 불행에 불안해진 마음은 한쪽으로 기우뚱 쏠린다. 균형을 잃은 감각은 부정적인 관망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과하게 조명을 비춘다. 매일의 뉴스는 경제가 무너지고, 정치적으로 반목하고,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암울한 기사가 주를 이룬다.
작년 이맘때 첫눈을 맞으며 나는 ‘사랑과 기쁨이 깊어지고 슬픔과 외로움도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썼다. 그 뒤를 바짝 쫓는 코로나의 위협은 꿈에도 모른 채.
암담한 미래의 예고편 같은 오늘의 비보 바로 뒤에서는 또 예상치 못한 희소식이 몸을 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희망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아침 출근길 뉴스에서는 멋진 기업인이 소개되었다. 굴지의 제약업계 대표인 그는 조만간 사용할 수 있는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게다가 치료제는 영업에 앞서 국민 건강을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우선 쓰일 것임을 장담했다. 기업의 가치는 그 조직과 국가, 개인의 ‘상생’에 있음을 힘주어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 폐해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따스한 파문을 일으키는 대담한 인터뷰였다.
암울한 코로나 소식에 시달린 한 해였지만, 새로운 출구도 함께 모색되었다. 입시 위주의 경직된 교육풍토도, 허례허식의 낡은 경조사 문화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공존의 삶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모두 함께 깨달았다.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삶은'무엇을 위해 사는가.' 묻는 철학적 고뇌에도 직면했다. 벼랑 끝을 향해 맹렬히 굴러가던 우리 지구환경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