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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l 05. 2023

모자 쓰고, 한복 입고, 춤추고

주말 사이에 손을 다친 아이 때문에 아침부터 무용수업을 빠지고 병원에 가게 됐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통증이 줄어들지 않아 급하게 어린이집에 연락을 하고 병원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멍이 크게 든 것도 든 것이지만 접시꽃보다도 작은 손이 퉁퉁 붓고 통증도 있던 터라 어쩌면 깁스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막상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다행히 겉보기에는 심각해 보여도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통증을 막기 위해 붕대만 조금 감기로 하고 진료가 끝이 났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등원을 시키고 무용 수업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준비물은 다 챙겨놓은 상태라 병원에서 나오자 집에 들러 가방만 가지고 나오면 조금 늦긴 하더라도 아이도, 나도 어린이집과 무용수업에 갈 수 있을 시간이었다. 급하게 가방을 챙겨 나와 어린이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나 때문에 무용 수업에 늦어서 미안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무용수업에 갈 수 있게 된 것이 고맙기만 했다. 못 갈 줄 알았던 무용수업에 가게 된 것이 아무리 기쁘다고 해도 아이의 상태가 별 거 아니라는 사실보다 기쁠 수는 없다. 어쨌든 그 순간 가장 큰 기쁨은 아이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그 마음을 전하며 어린이집에 내려다 주고 나도 곧바로 무용 수업이 있는 문화회관을 향해 달려갔다.


평소보다 십 분, 십오 분 정도 늦은 시각. 수업 시간에 늦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무용 수업에 오지 못할 줄 알고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한 내 상태였다. 가방 안에 한복치마와 버선, 속치마와 속바지는 다 들어있지만 원래라면 윗옷은 집에서부터 입고 와야 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갈아입지는 못했기 때문에 원래 입고 있던 원피스 위에 그대로 속치마와 겉치마를 두르고, 떡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도 벗지 못한 상태로 맨뒤에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수업 중간에, 혹은 쉬는 시간에는 그 모습을 본 언니들이 모자를 왜 벗지 않냐고 묻기도 했지만 떡진 머리가 부끄러운 걸 떠나 내가 원을 돌 때마다 주변으로 퍼져 나갈 냄새가 신경이 쓰여 도무지 모자를 벗을 수가 없었다. 빙글빙글 돌거나 잔걸음으로 앞, 뒤를 오갈 때면 분명 머리에서 나는 냄새가 내 코를 지나 다른 분들의 코에도 닿을 게 틀림이 없다. 날씨도 덥고 여러 번 원을 도느라 속도 안 좋은데 거기에 내 체취까지 더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여름이 오면서 연습실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보다는 벗은 사람이 훨씬 많다. 선생님께는 죄송했지만 내 주변에서 춤을 추는 다른 이들의 쾌적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쓴 채로 춤을 추기로 했다.


이 날은 이번 분기 첫 수업이 있던 날이기도 하여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였다. 새로운 분들은 예전에 그랬던 거처럼 수업 중간에 선생님과 옆 연습실로 건너가 기본무를 연습하고, 원래 수업을 듣던 분들은 연습실에 그대로 남아 입춤을 처음부터 배운 곳까지 계속해서 반복했다. 지난주까지 헷갈려했던 부분이 있는데 다른 분이 때마침 그 동작을 질문해서 다 같이 동작을 재점검하기도 했다. 엉겁결에 도착해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집에서 쉬지 않고 연습실에 나와 춤을 추니 지난주에 비해 몸에 익어가는 동작들이 늘어나 기뻤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급히 믹스커피를 준비했다. 주변에서는 빵을 조금 나눠주기도 해서 그것도 조금 먹다 보니 공복일 때보다 힘이 났다. 아이와 병원에서 돌아오는 대로 씻고 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급하게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복장뿐만 아니라 체력도 준비가 안되어 있다.


무용 수업에 입는 옷은 원래도 덥지만 통기성이 좋은 편인 윗옷이나 속바지에 비하면 원피스는 땀이 마르는 속도도,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도 더디기만 하다. 속바지는 생략했다고 해도 원피스 안에도 안감이 붙어 있어 춤을 추는 내내 평소보다 더위를 더 많이 느꼈다. 모자 안에서도 이마의 굴곡을 따라 땀이 흐르고 있어 모자를 벗을 수는 없으니 두 번째 수업 시간부터는 결국 속치마를 벗어던진 채 원피스 위에 겉치마만 입은 채 춤을 추기로 했다.


속치마를 벗고 나니 길어진 겉치마가 춤을 출 때마다 발에 밟혀 한 시간 내내 괴롭긴 했지만 비록 복장은 불량하고 나는 불편하더라도  모자도 쓰고 있고 원피스 위에 향수도 뿌린 탓에 주변 사람들의 코를 괴롭히는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튀는 복장 때문에 시선을 방해했을 수는 있지만 새로 온 분들의 복장 역시 자유로웠던 덕분에 조금은 묻힐 수 있었다. 밟히는 치마 탓에 춤도 엉망이 될 때가 많았지만 이것 역시 새로운 수강생들 사이에 묻혀서 여러모로 덕을 본 날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심하지 않은 덕분에, 새로운 수강생이 많아진 덕분에, 모자를 쓰고 원피스 위해 한복치마를 걸쳐 입고도 '놀고 놀고 놀아봅시다'라는 <신주풀이> 속 가사처럼 흥겹게 춤을 추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수업 내내 흘린 땀과 갑작스레 내린 비에 온몸이 젖은 상태였지만 모자도, 원피스도 다 벗어던지고 나니 마음도 홀가분하고 몸도 가벼워졌다. 조금 늦더라도, 준비가 완벽히 안되어 있어도 연습실에 나가 선생님을 따라 춤을 추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 만큼 머릿속도 가벼워진다. 비록 여러 가지로 엉망인 상태였지만 이번 주도 무사히 춤을 추고 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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