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엉망이라 이대로 집을 방치해 둔 채 무용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이 영 탐탁지 않다. 이 더위에 두 시간 동안 춤을 추고, 또 긴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와 땀 식힐 여유도 없이 집안일을 시작해야 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지친다. 땀범벅이 된 채로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곧바로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한숨 쉬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 주말은 또 이렇게 지나갔지만 여운과도 같이 남은 청소거리는 평일 아침을 맞이하는 상쾌한 기분을 얼룩지게 만든다.
어린이의 방학으로 두 번의 수업을 쉬고, 몸살로 한 주를 쉬었다. 삼 주를 쉬고 나면 관성처럼 또 수업에 빠지고 싶어 지는데, 집도 치워야 하고 몸도 쉬고 싶은데 한 주 더 쉴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쉬고 나면 다음 수업은 더 가기가 어려울 거 같아 눈 딱 감고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의욕을 끌어올리기 위해 괜히 안 하던 화장도 하고, 연습복도 평소보다 가볍게, 속치마 없이 얇은 레이스 겉치마와 속바지만 챙겨 집을 나선다.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어린이집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가기로 정했지만 아이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에 숨이 거칠어지며 들숨날숨이 오갈 때마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꺼진다를 반복한다. 택시에서 내려 아이의 손을 잡고 원으로 뛰어가는데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시며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라 묻는데 길게 설명할 여유도 없어 그저 ‘네’라는 짧은 대답과 미소만 겨우 지어 보인다. 선생님을 만나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아이의 뒤통수를 향해 ‘엄마 갈게!’ 하고 인사를 건네며 다시 택시에 몸을 싣자, 잠깐 뛰어갔다 왔다고 또 헉헉. 택시에서 내린 뒤로는 길을 건너느라 다시 한번 뜀박질이 이어져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땀에 흠뻑 젖어버린다.
수업을 삼 주나 빠졌으니 춤은 거의 기억나지 않을 터, 긴 휴식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리에도 힘이 없어 보기 흉하게 휘청거린다. 아이를 데리고 아무리 많이 걸어 다닌다고 해도 무용할 때 쓰는 근육과는 별개인 건지 얼마 전 수업에서 핸드폰을 오래 들고 있다고 팔에 근육이 붙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별 수 없지.’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추는데 머리와 달리 몸은 기억을 하고 있는지 의외로 동작은 금방 따라 한다. 물론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행히 음악의 흐름을 거스를 만큼은 아니다. 빠진 기간 동안 나간 진도 부분은 모르는 게 당연한 거고 이번 주를 비롯하여 한동안은 좀 헤매겠지만 또 연달아 수업에 나와 듣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어째 따라 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낙관해 본다. 여름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은 계절이라 그 와중에 모든 일을 다 잘하려고 하면 힘들다. 그냥 조금씩 내려놓고 잘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보다는 눈앞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면 완성, 완벽과는 멀어져도 스트레스는 덜하다.
이번 수업에서 새로 진도가 나간 부분은 동작이 조금 낯설다. 마치 춤을 추다 말고 꼭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가리키며 시선을 던진다. 이쪽과 저쪽을 보며 공손히 손을 올리는 모습에 성주신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표현했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이 댁 성주는 와가성주, 저 댁 성주는 초가성주’라는 가사에 맞게 위치를 가리키는 동작이다. 춤을 추는 동안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는 남도민요인 <성주풀이>, 여기서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을 뜻한다. 이번에 다시 한번 찾아보니 <성주풀이>는 실제로 성주굿에 쓰이던 노래가 민요처럼 널리 불리게 된 거란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악귀>에서도 짧지만 성주가 언급된다. 어느 건물에서 악귀의 물건을 찾던 도중 민속학 교수인 해상이 성주받이 이야기를 꺼내며 바닥이 아닌 천장을 살펴보는 장면에서다. 성주굿, 성주받이라는 것을 낯설게만 여겼는데 해상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집안 대들보에 장식하던 북어의 존재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요즘에는 새 집에 이사를 들어간다고 고사를 지내거나 하는 일이 드물지만 새 건물이 완공된 후에는 고사를 지내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찾아보니 고사를 지낼 때 고사떡이나 복어, 술을 올리는 대상 중에 하나가 바로 성주신, 성주대감이라고 한다.
성주신이라고 하면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성주풀이> 가사를 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와가성주, 초가성주부터 시작해 초년성주와 쉬흔일곱의 성주도 있단다. 그렇다면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건물 지붕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을 테니 콘크리트성주라 불러야 하는 걸까. 우리 아파트 콘크리트 성주님도 완공 당시 고사떡과 술을 한 잔 얻어 드셨는지 궁금하다.
기본무와 입춤, 그리고 한삼무까지 추고 나서야 수업은 끝이 난다. 평소와 달리 속치마도 빼먹고 겉치마도 레이스로만 된 얇은 걸 골라 입었는데 그래도 더운 건 변함이 없다. 입추가 지났지만 연습실 안팎은 구별 없이 덥기만 하고 택시비를 아끼려다 차라리 체력을 아껴 집안일할 때 쓰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땀이 마르기도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자 콘크리트성주가 보고 있다면 노할 만한 풍경에 한숨이 나오지만 이대로 더 땀을 흘리며 집부터 치우고 마음 편하게 씻기로 한다. 배도 고프고 잠도 오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춤을 추고 오니 청소를 하는 동안에도 표정이 굳은채 어깨로 남은 여흥을 들썩인다. 내가 이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본다면 콘크리트 성주님의 노여움도 가시지 않을까. 애초에 그런 성주신이 있을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