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 시험

향으로 적시는 하루_윤정미

by 응응


2달 동안의 교육과 15시간의 실습을 마쳤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시험을 보는 날이다.


시험 순서는 뽑기를 했다.

첫 번째로 시험을 치는 이는 윤정미.

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카페 주방에 남았다.

나머지는 카페에서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닫힌 창으로 바라봤다.




윤정미.

세상의 많은 향 중 커피 향처럼 삶에 깊게 스며드는 것도 드물다.

윤정미에게 커피 향은 단순한 기호 이상의 것이었다.

그건 어떤 날엔 위로였다.

어떤 날엔 결심이었고 기억이었다.

정미는 도서관에서 커피를 내리는 여섯 명의 바리스타 자원봉사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다.

말하자면 ‘언니’다. 커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윤정미는 교사였다.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며 오랫동안 아이들 틈에서 살아왔다.

실험실에 비커와 알코올램프 냄새가 익숙했다. 호기심이 많은 과학선생님.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선생님이었다.

남편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두 사람은 종종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며 평생을 교육 속에서 살아왔다.


남편이 이 지역 대학에 부임하게 되면서 그녀는 정들었던 학교를 명예퇴직했다.

섭섭함을 뒤로하고 내려온 이곳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도시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자연이 가까운 이 작은 도시에서 그녀는 조금 다른 삶의 결을 만났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작은 도시를 걸으며 살폈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좋았다. 책 향이 풍부했고, 조용한 사람들이 많았고, 무려 작은 카페가 딸려 있었다.


도서관 카페에서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바리스타 모집’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마음이 설렜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해보겠어?"

교단을 떠난 뒤 처음으로 '자발적 선택'을 한 일이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등록한 수업. 그곳에서 다섯 명의 여자들과 함께 공부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 시를 쓰는 감성적인 사람, 부산이 고향인 의리녀, 남편을 인생 최고의 남자라 여기는 가정주부, 그리고 치과의사 아내.
정미는 그들의 나이와 환경, 기질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손에는 분필 대신 포터필터를 들었다.


그런데 정미가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96세의 시어머니.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는 이미 오랜 치매로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다.

말도 잊은 지 오래다. 기억은 잔상처럼 희미하다.
그런 어머님을 위해 정희는 매주 한 번씩 직접 요양병원을 찾는다.
만두, 달달한 빵, 음료수, 과일을 한 아름 안고.

병원 밥을 거의 드시지 않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냉동실을 가득 채운 작은 식사대용품들은 정미의 노동이고, 정성이며, 책임이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이번엔 고기만두예요.”
대답 없는 얼굴 앞에서도 정희는 늘 같은 말을 건넨다.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눈빛조차 흐릿한 시어머니.
그녀는 언젠가 조용히 중얼거린 적이 있다.

“오래 산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도 있구나. 그건 어떤 면에선 재앙이야.”

말하고 나서 스스로 놀랐지만 그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매주 빠짐없이 요양병원에 간다.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고르는 일은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카페에서는 늘 따뜻한 향이 돌고, 그녀는 그 향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맛있게 드세요.”
목소리는 여전히 선생님 같지만 더 부드러워졌다.

커피에 진심인 그녀에게 물었다.
“커피는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정희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커피는 내가 내 마음으로 내릴 수 있어서 좋아. 향이 내 기분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거든.”


올해 8월, 남편이 정년퇴직을 한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면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아이들이 사는 곳에 더 가까이에서 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미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은 여기 있어야 해요. 어머님이 계시니까요. 아직은 조금만 더.”

그리고 그 말은 그녀의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조용히 눈을 감는 날이 오면 그때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향기로운 하루들이 소중하다.

윤정미는 오늘도 포터필터에 그라인더로 간 커피를 소복이 쌓고, 탬핑해 내린 커피 향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그녀만의 진심이 커피 향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스며드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커피 향으로 하루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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