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텀블러와 공용 커피잔의 차이

칠이 벗겨진 텀블러의 무거움와 매끈한 커피잔의 가벼움

by 응응

점심시간의 소란스러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오후 1시. '커피숲'에 짧은 정적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그들이 나타난다. 나는 그들을 속으로 텀블러 부대라고 부른다.

카페에는 일회용 컵이 없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명확하게 나뉜다. 자신의 컵을 챙겨 오는 사람과 그냥 오는 사람.

텀블러 부대는 전자다. 그들은 주문할 때 말이 없다. 그저 카운터 위에 자신의 텀블러를 탁하고 내려놓을 뿐이다. 그 둔탁한 금속음은 그들과 나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인 신뢰의 소리다.

바닥이 찌그러진 검은색 텀블러는 얼음 많게, 물 없이, 투샷. 뚜껑 고무패킹이 헐거워진 분홍색 텀블러는 뜨거운아메리카노. 알록달록 텀블러는 샷 추가.

텀블러는 그 주인을 닮았다. 매일 도서관 3층 자율학습실에서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책을 파고드는 장수생들의 텀블러는 하나같이 상처투성이다. 겉면의 페인트는 손이 자주 닿는 부분만 하얗게 벗겨져 있고, 바닥은 수천 번 책상에 놓였다 들렸다를 반복하며 닳아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쓰게 하는 건 늦은 오후에 오는 공무원 준비생 J씨의 텀블러다. 처음 봤을 때 짙은 남색이었던 그의 텀블러는 이제 은색 스테인리스 속살이 군데 군데 보일 만큼 낡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오늘도 커피가 가득 담긴 텀블러를 받아 들며 짧게 목례한다. 그의 텀블러에서는 늘 희미한 묵은 내가 난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대충 헹궈가며 써온 치열한 세월의 냄새다. 그 냄새가 왠지 짠해서 나는 가끔 그가 텀블러를 내밀면 "뜨거운 물로 한 번 소독해 드릴까요?"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그는 수줍게 웃으며 텀블러를 맡긴다. 뜨거운 물로 헹궈내고 새 커피를 담아주면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펴지는 것만 같다.

반면 매장의 공용 커피잔이나 유리잔을 쓰는 손님들은 대부분 마음이 가벼운 이들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책을 빌리러 온 동네 주민이나 잠시 더위를 식히러 들어온 산책객들. 그들에게 커피는 생존을 위한 카페인 수혈이 아니라 여유를 즐기는 기호 식품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하얀 커피잔을 받아 들고 책상에 앉는다. 그들에게 건네는 컵은 깨끗하다. 매일 뜨거운 식기세척기에서 소독되어 나오는 컵처럼 그들의 표정에도 찌든 구석이 없다. 다 마신 컵은 반납대에 가볍게 올려두고 떠나면 그만이다. 설거지의 수고로움도 컵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나는 가끔 그 차이가 서글프다. 누군가는 무거운 텀블러를 생명줄처럼 하루 종일 짊어지고 다녀야 하고, 누군가는 빈손으로 와서 가볍게 즐기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텀블러가 곧 그들이 짊어진 꿈의 무게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수험 생활의 무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J씨가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게 보인다. 아마 다 마신 텀블러를 헹구러 가는 길일 것이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텀블러를 가방에 넣고 그는 다시 좁은 자율학습실 책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반납된 커피잔들을 닦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J씨가 빈손으로 아주 가벼운 차림으로 이곳에 오기를. 그 낡고 무거운 텀블러는 집에 두고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들어와 웃으며 말하기를.

"오늘은 그냥 커피잔에 주세요. 잠깐 쉬다 갈 거거든요."

그날이 오면 나는 가장 밫나는 커피잔을 골라 그 어느 때보다 향긋한 커피를 내려줄 것이다. 칠이 벗겨진 텀블러 대신 매끈하고 따뜻한 커피잔이 그의 손에 들리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묵묵히 스팀 노즐을 닦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