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초음파를 본 날.
좀 잠잠해지나 싶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이다.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는지. 아내가 임신까지 한 상태라 더욱 신경이 쓰인다. 혹시라도 나의 부주의로 아내나 아기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최대한 밖에도 안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불안감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가 휩쓴 지난 1년 동안 그 전에는 당연하게 느꼈던 일상들이 주는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가수 이적님은 '당연한 것들'이란 제목의 노래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노래했다. 다들 지쳐가고 있는 시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우리 아가와 나들이를 갈 수 있을 때쯤엔 우리가 알고 있던 평범한 일상이 돌아와 있기를 바라본다.
며칠 전에는 우리 아기 정밀초음파를 봤었다. 그 날 다시 한번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에 정밀초음파를 검색해보면 뱃속 아기의 얼굴이 3D 입체 형식으로 찍힌 사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였는지 난 정밀초음파가 아기 얼굴을 입체 사진(?)으로 보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직접 경험을 해보니 정밀초음파는 말 그대로 아기 신체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이었다. 단어 그대로 정밀하게. 아기 얼굴을 입체사진으로 보는 것은 정밀초음파를 통해 확인하는 하나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생초보 아빠구나 생각했다.
평소에는 길어야 10분 정도면 보고 끝나던 초음파를 정밀초음파 보던 날은 30분은 훌쩍 넘게 봤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 초음파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도 많았고, 그만큼 설명도 길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엔 비장과 간의 크기가 적당한 지, 제 위치에 있는지 비춰주셨다. 다음은 심장을 비춰주셨다. 심방과 심실이 잘 있는지 먼저 확인을 했고 다음으로 막혀야 할 부분은 막혀있고 뚫려야 할 부분은 뚫려 있는지 확인해 주셨고, 판막도 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다음으로는 혈관이 잘 있는지, 혈압은 적당한 지 체크를 했다. 당시도 그랬지만 여전히 뱃속에 있는 아기의 혈압을 어떻게 재는지는 신기하다.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기의 혈압도 정상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해주셨다.
이어서 신체 여러 부분의 뼈가 잘 자라는지 확인시켜 주시고, 팔, 다리와 눈, 코, 입도 건강한 지 조목조목 짚어주셨다. 이렇게 아기의 모습을 오래 본 적은 처음이라 모든 것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사실 의사 선생님께서 여기가 심장이야, 여기가 귀야 하고 알려주셨는데도 검은색이랑 흰색밖에 안 보이는 초음파 사진 자체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속으로 저게 심장 모양이 맞아? 저게 귀가 맞아? 하고 궁금해하기만 하다가 의사 선생님 진행에 따라 다음으로 넘어간 것도 많았다.
처음엔 여느 때와 같이 들뜬 기분으로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정밀초음파가 계속될수록,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네요, 정상이네요,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가슴속 깊게 박혀왔다. 누워서 화면을 보던 아내 역시 언제부턴가 의사 선생님의 건강하다, 정상이다 라는 말이 끝날 때마다 조용하게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아내가 뱉는 한숨소리엔 옅은 미소가 묻어있었다.
몰랐었다. 정상이네요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인걸. 우리 아기의 신체 이곳저곳이 아무 문제없이 잘 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지.
의사 선생님 말이 심장에 막혀있어야 할 부분이 안 막혀있는 태아가 있었단다. 또 비장과 간이 자기 위치에 있지 않고 가슴 부분까지 올라와버린 아이가 있었단다. 얘기만 들어도 안타깝고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말이었다. 동시에 이기적일 수 있지만 우리 아기에게 그런 일이 없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의사 선생님의 한 말들이 하나씩 귓가에 맴돌았다. 건강하네요. 이상 없네요. 걱정 안 하셔도 되겠네요. 이 말들을 자꾸 되뇌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면 그저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그 날 저녁, 손주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고 정밀초음파 결과를 엄마에게 전해줬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했다. 그런 엄마에게 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쩌면 기적 같은 일들이고, 엄청 큰 행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낮에 내가 느꼈던 그 고마움에 대해서 말이다.
몸이 건강한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금세 잊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다 그 날 정밀초음파로 건강하게 크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의 얼마나 행복한 일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빠가 되고 나니, 간절하게 행복하길 바라는 한 생명이 생기다 보니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임신 12주 차 때 1차 기형아 검사가 있었고, 16주 차 때는 2차 기형아 검사가 있었다. 아내는 4주 정도 간격을 두고 병원에서 피를 뽑았다. 기형가 검사 결과는 2차 검사 이후 일주일 후에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한 번씩 결과가 걱정이 된 적이 있었다. 사실 한 번씩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씩 걱정이 됐었다. 무슨 이유를 달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자식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 하나였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고, 아내는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아무 말 없이 네, 네 하고 대답만 하는 아내를 보고 바로 무슨 통화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전화기에 대고 네, 네, 알겠습니다 만 반복하면서 아내는 슬쩍 고개를 들어 날 봤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나도 웃었다. 굳이 아내한테 결과를 묻지 않아도 됐다.
그때도 한 번 느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들은 없다고. 평범하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꿈만 같은 일들이란 걸. 그 꿈같은 일이 우리 아기에게 있어줘서 너무 행복했다. 평소엔 신경 쓰지도 않던 당연한 것들은 사실 행복 그 자체였다.
인터넷에 볼 수 있었던 눈, 코, 입이 또렷하게 나온 아기의 얼굴 사진을 나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아기는 부끄럼이 많은 녀석인지 왼손을 왼쪽 얼굴에 꼭 붙인 채 엄마, 아빠에게 얼굴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얼굴 사진을 잘 찍어주고 싶었던지 이리저리 초음파를 돌려보셨지만 결국을 포기하셨다. 결국 우리 부부는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아기의 사진을 받게 되었다.
얼굴은 못 봤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병원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또렷한 아기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블로그나 카페에 아기의 얼굴 사진을 올렸던 다른 엄마, 아빠들처럼 말이다. 아빠 닮지 않아 콧대 대가 높고 동그랗고 큰 눈을 한 우리 아기의 얼굴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사진은 전혀 상관없다. 건강하게만 잘 자라고 있으면 됐다 싶다.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기적들, 그 기적들이 우리 아기와 함께 해주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