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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Apr 11. 2021

기도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 벽 쪽을 향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내가 향하고 있던 벽은 항상 휴대폰 충전기를 꽂아 놨던 벽이라 당연히 충전 중인 휴대폰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을 걸어도 아내는 대꾸가 없었다. 못 들었나 하고 다시 말을 걸어도 역시 아무 반응이 없다. 뭐 하는 건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내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도 꼭 감고 있다. 잠시 기다리자 아내는 고개를 들고 기도하는 중이었다고 내게 말했다.


  아내는 교회도, 성당도, 절도 다니지 않는다. 딱히 믿는 종교도 없다. 그럼에도 아내는 기도를 곧잘 하곤 했다. 누구에게 기도를 드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절히 바라는 일이 생기면 아내는 늘 기도를 했다. 사실 뭐 누가 기도를 듣는지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누가 됐든 내 기도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아내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됐다. 배 속에 축복이가 아무 문제없이 아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거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성모 마리 아님 든, 햇님이든, 달님이든, 그 무슨 신이 됐든 간에 자기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달라고 아내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두 손 꼭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도 말 한마디 안 해줄 만큼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말이다.




  어쩌면 아내는 임신을 하고 내내 쭉 기도를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고 임신 확인을 하기까지 아내는 매일 기도를 했다. 그때 기도는 당연히 이번만큼은 꼭 소중한 아이가 생기게 해 달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1차, 2차에 걸친 기형아 검사를 한 후로도 아낸 매일 밤 기도를 했다. 그때 기도는 우리 축복이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이것 외에도 아내가 기도하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다. 축복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난 후에도 아내는 병원을 나와 기도를 했다. 감사하다고. 배가 뭉치거나 불편한 느낌이 들어 졸인 가슴을 안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가 의사 선생님의 아무 문제없다는 말을 듣고도 기도를 했다. 다행이다고. 생각해보니 아내는 꾸준히 축복이를 기도를 해왔던 것이다. 나한테는 말도 안 해주고 혼자만 좋은 엄마가 되고 있었다니.


  나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아내는 나도 같이 기도를 하자고 했다. 곧 만날 축복이를 위해서 말이다. 아내 말을 듣고 나도 이제라도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내가 건강하게 축복이를 낳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 축복이 밝고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우리 세 가족이 얼른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밖에도 일상적이지만 기적 같은 수많은 바람들을 하나씩 기도에 담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종교도 없고, 교회도 절도 안 다닌다고 해도 왜 여태껏 나는 기도 한 번을 안 했을까.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매일 말 뿐이고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싶었다.

  

  처음 축복이를 맞이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신기하고 벅찼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들을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참 못된 남편, 진짜 못난 아빠. 

  내가 신경도 안 쓰고 있는 동안, 어쩌면 매일 짬을 내서 하던 아내의 기도에 담긴 간절함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느끼던 행복이 있었던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보태야겠다. 아주 잠깐씩이더라도 솔직하게 기도를 해봐야겠다.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교회를 다니지도 않던 엄마가 이모를 따라서 새벽기도를 나간다고 했다. 교회를 안 다녀서 모르는데 아이의 엄마와 태어날 아이를 위한 복중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한다. 작은 교회라서 새벽기도를 오는 사람은 10명도 안된다며 요즘 같은 시국에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다 했다.

  절에는 다니지도 않으면서 나랑 동생이 수능 볼 땐 절에 100일 기도를 올렸던 엄마다. 그렇게 엄마는 당신의 간절함을 어디론가 날려 보냈다. 이번에 엄마가 선택한 방법은 새벽기도였나 보다. 여기저기 벚꽃이 핀다고 한들 아직까진 새벽으론 쌀쌀한 날씨인 데다가, 평소에 새벽 일찍 일어날 일도 없었던 엄마가 그렇게 새벽기도를 다녀준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또 그렇게 내가 못 해준 걸 엄마가 해주고 있었다.




  요즘 아내는 캐리어에 짐을 하나씩 챙기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에 가지고 들어갈 물건에는 아내가 사용할 물건도 있지만, 막 태어난 축복이가 사용할 물건도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있어야 할 신생아 용품을 얼마 전부터 장만하기 시작했고, 어제는 깨끗하게 삶고 건조하고 곱게 개어놓았다.

  내 손가락 두 개만 들어가도 가득 차는 양말과, 두 손바닥을 모아놓은 것 만한 배냇저고리와 바지를 보고 있는데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작은 아기를 내가 잘 볼 수 있을까? 손수건과 옷들을 앞에 두고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이렇게 애기 물건이 눈 앞에 있으니까 곧 아빠가 된다는 게 확 실감이 된다. 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떤 느낌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렇다. 

  축복이를 건강하게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나는 왠지 육아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욕도,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긴장도,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본다는 설렘도 있는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이 요즘은 틈만 나면 들고 있다.

  예정일이 10일도 안 남은 오늘, 당장 축복이가 태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한 번도 축복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두 손 모아서 축복이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아픈 곳 하나 없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건강한 모습의 축복이를 맞이하게 해 주세요. 아내가 밤마다 기도하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엄마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장면이 우리 가족에게 펼쳐지게 해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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