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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Apr 11. 2021

어떤 꽃보다 더 곱게

  대부분의 일들은 갑작스럽게 맞이할 때가 많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새벽에 아내가 나를 급하게 깨웠다. 아내는 막 깨서 정신없는 내게 양수가 흐른다고 말했다. 보통 양수가 터졌다는 표현이 종종 씌는데 아내의 경우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단다. 아주 조금씩 양수가 세어 나온다, 아니면 양수가 조금씩 맺힌다라는 표현이 맞겠다고 아내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큰일이 아니라고 내게 말했다. 병원에 가서 아기가 무사한지 확인만 하고 금방 끝날 것 같으니 다시 집에 와서 출근 준비를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때가 새벽 6시쯤 되었었다.


  아내는 간호사를 따라가고 나는 병원 로비에 잠깐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아내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간단한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마치고 간호사를 따라간 곳은 분만실이었다. 분만실이라니. 분명 아내와 나는 간단한 검진만 받으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처음이라 빠릿빠릿하게 이해를 못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간호사가 말하는 입원은 오늘 아기가 태어난다는 소리 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양수가 흐르면 감염 우려가 있어서 최대한 빨리 출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공부를 한다고 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 초보 아빠 티를 벗을 수가 없다.



 

 전날 아내는 통곡 마사지를 받았다. 늘 다니는 산부인과 옆에 '아이통곡'이라고 써진 간판을 보고 저게 도대체 뭐길래 이름이 저렇게 무섭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이가 통곡을 할 정도로 아픈 마사지냐고 말했다가 뭐 이렇게 아는 것이 없냐고 아내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러고 나서야 통곡 마사지가 모유수유에 도움을 주는 엄마들을 위한 마사지라를 걸 알았다.

  임신한 엄마가 통곡 마사지를 받으면 조만간 출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사지가 출산을 유발한달까. 실제로 통곡 마사지받고 다음날 출산을 했던 분이 직접 말해주기도 했고, 같이 대화하던 다른 분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내가 통곡 마사지를 받고 다음날 분만실에 들어간 걸 보니 괜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내는 꽤 오랜 시간 분만실에 있었다. 새벽에 도착해서는 오전,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가 느끼는 진통도 커져갔다.

  잠깐 진통 중에 있던 아내의 귀여운 에피소드 하나만 적을까 한다.

  이전에 분만실에서 남편이 꼭 해야 할 행동들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래서 배운 대로 실천을 해봤다. 먼저 아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거나 출혈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 손을 잡을 꼭 잡아줬다. 또 고맙다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도 해줬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너무 아프다고 손을 잡지 말라고 했고, 말도 걸지 말라고 했다. 역시 뭔가를 글로만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말도 못 하고 신음만 하던 아내는 무통주사를 맞았다. 무통주사가 들어가자 눈도 못 뜨고 인상만 쓰던 아내의 얼굴은 조금씩 펴졌고, 한 마디 한 마디씩 말도 했다. 조금 더 있자 약 효과를 완전히 체감을 했는지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말했다. 에어컨을 만든 사람과 무통주사를 만든 사람한테 노벨상을 줘야 한단다. 처음에는 뭔 소리가 하다가 나중에야 그런 아내가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자기도 웃겼던지 아내도 말해놓고 자기가 웃었다. 아내가 평소 에어컨 발명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는 줄은 또 몰랐었네.




  분만실에 있는 동안 주위 방에서 울려 퍼지는 아기 울음소리 여러 번 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가 분만실에 있다는 게 실감이 되고, 긴장도 됐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도 아내를 몇 번씩 찾아왔다. 곧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할 꺼라던 의사 선생님은 다음번에 찾아와서는 1시간 정도면 아기가 나올 것 거라고 말했고, 또 다음에 분만실에 온 다음엔 길어야 20분이면 출산할 거라고 말해줬다. 

  아내의 진통이 점점 심해지자 분만실에 들어온 간호사님은 내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안에서는 숨 쉬세요, 힘주세요라고 크게 소리치던 간호사님 목소리와 아내가 힘들어하는 소리만 들렸다. 처음 분만을 시도해보고는 복도로 나온 간호사님은 잠시 후에 다시 해보자고 말하고는 나보고 다시 아내 옆에 있으라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분만실로 아까 간호사님이 들어오셨다. 이번에도 난 복도로 나가 안에서 힘들어하는 아내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제왕절개 수술까지 가지 않고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복도에서 눈 감고 기도도 했었다. 두 번째 분만 시도를 해보고 간호사님은 다시 분만실을 나왔고, 나는 다시 분만실로 들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자니 고맙기도 하고, 맘이 편치 않기도 하고 그랬다. 딱 그때였다. 방금 나갔던 간호사님은 바로 분만실로 들어와서는 내게 탯줄을 자를 거냐고 물어봤다.


  헤어캡, 수술용 앞치마, 위생장갑을 하고 다시 복도에서 기다렸다. 간호사 한 분만 들어갔던 아까와 달리 이번엔 의사 선생님에 간호사 세 분이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탯줄 자를 준비까지 하고 있는 거 보면 이번에는 아기를 만나겠다 예상은 했다. 그런데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으앙으앙으아아아앙.

  정말 순식간에 분만실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에 전율이 쑥 훑고 내려가고 뭔가 개운진 느낌이 돌았다. 분만실 문이 열리고 아기 태어났다고 아빠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다. 

  새벽부터 왔다 갔다 했던 분만실은 항상 다시 들어왔을 땐 아내만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아기가 같이 있었다. 항상 이름만 부르던 축복이는 아내의 가슴에 엎드려 누워서 눈을 꼭 감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울려는 축복이를 아내와 내가 달래자 울음을 멈췄다. 마치 엄마랑 아빠 목소리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은 3일밖에 안 지나 그럴 수도 있는데,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정 말고 기쁘고, 뿌듯하고, 신기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눈물도 그렁그렁 맺혔다.




  탯줄은 생각보다 질기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튼튼해서 의외였다. 간호사님들은 친절하게 아기 사진 찍을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다만, 플래시만 안 터지게 하라고 했다. 축복이 엄지손톱이 엄청 길어서 놀라웠다. 계속 분만실을 오가며 아내의 출산을 돕던 간호사님은 우리 축복이가 예쁘다고 말해줬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빼놓지 않았고, 다 마친 의사 선생님은 내게도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다시 떠올려봐도 내겐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장면들이다. 

  잠깐 병원에 들렀다가만 다시 평범하게 시작할 것 같은 나의 하루는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큰 특별한 이벤트 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축복이는 예정일보다 일주일 빠르게 갑작스럽게 엄마, 아빠를 찾아왔다.


  2021년 4월 2일 오후 3시 52분. 수많은 꽃들이 피어있고, 피고 있던 어느 봄날, 어떤 꽃보다 더 곱게 우리 축복이가 내 옆에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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