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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희 Nov 14. 2021

제주 갱이 동백이

5. 믿을 수 없는 일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왜 아줌마가 이 구좌읍 시골에 혼자 내려와 살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나는 아줌마도 나처럼 유기견이 아닌가 했어요. 가끔 아줌마는 나처럼 짖었거든요.  또 풀밭 위에서 나처럼 네 발로 서서 나를 따라다니고는 했어요. 그러고는 깔깔 웃어대고는 했어요. 나는 겉으로는 모른 척했지만, '아줌마도 개일 거야'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줌마는 제주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이 너무 좋아서 덜컥 집을 사버렸다지 뭐예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줌마 남편은 화를 내었고, 아직도 화가 나있어서 제주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아줌마가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제대로 들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어느 날 서울에서 아줌마 아들이 내려온다고 아줌마가 알려주었어요. 나는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었어요. 아줌마 아들을 상상해 보았어요. 나랑 비슷한 얼굴일 것 같다고, 나처럼 검은색일 것 같다고...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어김없이 아줌마 집으로 향했어요. 

 "오호 네가 진표구나? 엄마한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나에게 말을 걸어온 형아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마치 아줌마처럼 말이에요. 나는 형아에게 잘 보이고 싶어 졌어요. 처음 본 형아였지만 마음에 쏙 들고 말았지 뭐예요. 나는 입을 벌리고 내 긴 꼬리를 흔들며 사랑스러운 척했어요.

 "어머, 시온아, 진표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주 춤을 추는 것 같네?

 아줌마는 손뼉을 치며 나를 향해 웃어주었어요. 나는 더 신나서 진짜 춤을 추듯이 네 발을 움직이며 꼬리를 흔들었어요. 아줌마는 내 춤에 맞추어 손뼉을 더 크게 쳐주었어요...

 다시 청도로 가게 된 엄마, 아빠는 나를 아줌마네 부탁했고, 아줌마는 나를 잘 보살펴주겠다고 했어요. 나는 내가 아줌마를 보호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다음 날 아줌마는 내 눈이 털에 가려져 있어서 답답해 보인다는 할머니 말씀이 기억났고... 아줌마는 가위를 들고 와서 내 눈 위 털을 자르기 시작했어요. 자르다 보니까 입 아래 털도 자르고 싶어진 아줌마는 가위질을 계속했어요. 자르다 보니까 귀 쪽 털도 자르고 싶어진 아줌마는 가위를 내려놓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느껴지던 사각사각거리던 감촉이 기분 좋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줌마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줌마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보면서 오른쪽 털을 자르고 왼쪽 털을 자르기도 했어요.

 잠에서 깬 시온이 형아는 깜짝 놀라면서 주인 허락도 안 받고 털을 자르면 어떡하냐고 아줌마에게 뭐라고 하더니 내 얼굴 털을 다듬어 주었어요. 시온이 형아는 군대에서 이발병이었대요. 그래서인지 아줌마가 자르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어요. 아줌마는 털을 잘랐으니까 목욕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아줌마는 따뜻한 물로 내 몸을 적시더니, 향이 좋은 뭔가를 내 몸에 바르고 거품을 내었어요. 나는 너무 떨렸어요. 그리고 무섭기도 했어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에게 '금방 끝날 거야' 하고 속삭이듯 말해주었어요.  아줌마는 그런 나를 안쓰러워했어요. 아줌마는 알았던 거예요.  내가 목욕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아줌마는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었고 바람이 쌩쌩 나오는 것으로 내 털을 말려 주었어요. 그리고 말이에요. 놀랍게도 나는 처음으로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방에서 잠을 자다니... 지금까지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불던 날,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날... 매일매일 바깥에서만 지내다가 내가 방에서 자게 되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자꾸 내 몸을 깨물어 보았어요. 

 "왜 그러지? 진표야! 몸이 가렵니? 왜 자꾸 네 몸을 물어?"

아줌마가 걱정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 몸을 그만 물기로 했어요. 아줌마는 방석과 담요를 가져와서 내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잠자리를 포근했지만, 나는 쉽게 잠이 오지를 않았어요.  꿈과 같은 오늘을 잠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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