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빛을 품은 그리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을 쓴다 는 사람치고 달을 언급하지 않았던 이는 가물다.
지구의 하나뿐인 위성인 달, 특히나 보름달은 만월이라서 만삭에 비유한다. 하늘에서 빛으로 쓰다듬은 부드러움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모성으로 모든 걸 품어줄 것만 같다. 휘영청 밝은 달을 보노라면 푸근해지면서 소망을 빌고 싶어 진다.
종이로 만들어진 달은 언제든 찢길 수도 구겨질 수도 있다. 여기 숨 막히는 일상에 갇힌 수인의 삶을 사는 이화가 있다. 남편의 모임에 참석한 곳에서 숨통이 트이는 물꼬를 만난다. 독기를 뺀 처연한 눈빛을 가진 이화는 똑똑한 여자이다. 시청자가 밤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리라.
우스갯소리로 진정한 사랑은 시간과 돈을 기꺼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 시간을 쪼개주고, 피땀으로 번 돈을 기꺼이 꺼내서 생색은 빼고 주어야 한다. 돈이 없다면 몸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화의 남편은 서류상일뿐 정서적인 면에선 남보다 못한 못난이다. 그는 시간도 돈도 제 것을 짜내 줄 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고객이 맡긴 황금에 손을 댄다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순 없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보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뱅커의 삶을 살았다. 종이달이란 어쩌면 타인의 지폐로 만들어 잡을 수 없는 허황한 꿈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업무가 바뀌는 순환을 반복했다. 몇 년을 한 곳에서 익숙해진다 싶을 때면 타지로 발령 나기도 했다. 잘 다니던 학원 커리큘럼은 마지막 학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던 타이밍에 씁쓸한 적도 있었다.
자체 감사 업무를 몇 해 한 적이 있다. 참 다행인 것은 그때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 그랬다면 업무 소홀로 경위서를 내거나 몇 개월 감봉 등 불명예를 뒤집어썼을 것이다. 계 이동을 하고 나서 한참 후 욕심이 부른 동맥이 터졌다. 횡령을 몇 차례 지척에서 또 원거리에서 겪고 난 후 질문을 하게 됐다. 가치관이 올바른가. 분에 넘치는 명품에 눈독을 들이는가. 껍데기가 훌륭한 이성에 집착이 있는가.
이십 대 초반인 청경은 연로한 고객에게 특히 친절했다. 성격도 사근사근하고 발랄했다. 지점에서는 하나같이 칭찬에 입을 모았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은 노인공경에 대해서. 어느 날부터 무단결근하더니 경찰이 찾아왔다. 손안의 컴퓨터에 둔감한 어르신들의 모바일뱅킹을 도와주면서 슬쩍 고객의 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동거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생활비로 썼다는 진술이다.
이십 대 후반. 국고 담당은 정기 휴가보다 이른 휴가를 냈다. 자리를 비운 동안 횡령이 드러났다. 간이 커서 십억을 꺼내 갔다. 국고는 돌아오는 텀 term이 있었다. 그 기간을 역이용해 돌려 막아 제때 드러나지 않았다. 직원이 힘들게 그녀를 찾아낸 곳은 강원랜드였다. 물 찬 제비를 만나 사랑에 눈이 돌아갔다. 벤츠를 사주고 명품으로 제비의 사랑을 붙들어 매고자 한 것이다.
삼십 대 초반. 반짝거리는 보석과 명품을 늘 휘감고 다녔다. 티파니, 샤넬, 에르메스, 불가리는 제2의 피부만 같았다. 좀 있는 집 금수저인 줄로만 알고 갓 입사한 새내기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숫자를 잘못 입력하거나 고객의 변심으로 취소할 수 있다. 감사는 취소에 민감하다. 일단 의심한다. 이화의 수법은 결국 들키고 만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욕망의 그늘에선 빨간불이 없다. 레드~ 썬! 이란 늪에서 벗어나기란 초인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망령의 그림자인 횡령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는 시대에서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이들의 횡령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올챙이 도둑은 쉽사리 잡힌다. 작년에는 거대한 간을 가진 대도가 출현했었다. 비치는 삶이란 광풍에 휩싸이면 보이는 황금이 내 것인 줄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땀 흘려 번 돈의 가치를 부각해야 할 이유이다.
속부터 차오르는 빛은 자랑하지 않아도 이목을 끈다. 겉멋 들지 않고 내면을 가꾸는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에게 빚은 종이가 아닌 말랑한 달로 어루만질 날 머지않았다.
♤금융실명제로 무기명 CD 양도성예금 증서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대여금고에 보관하면서 담보로 잡는 일은 있을 수 있다. 이건 일반인은 접근성이 희박하다.
♤손권은 조금 모아지면 한국은행에 보낸다. 태우질 않는다.
♤VVIP라도 방문 시에는 최소 2인 1조로 움직인다.분실 또는 인터셉트의 여지가 있는단독은 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