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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Aug 28. 2023

타고났음에도 미쳤다면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상상해 봅니다


타고났는 데다 미치셨



한 분야에서 모두가 우러르는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난   뒤란에는 어떤 흔적이 있는 것일까.


타고난 천재가 죽음까지도 무릅쓰고서 진지하게 몰입했다. 집착하고, 인내하고, 오로지 한 가지에 꽂혀 있다면 신과 같은 경지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길을 무심하게 걷다 보면 아주 드물게 눈이 저절로 따라가는 미인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카리스마 일 수도 어떤 분위기나 매력 또는 미모일 수도 있겠다. 향수를 다 읽은 뒤로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가 매료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새삼스럽고 코웃음 치는 질문이 떠오른다.


향수는 몰입도가 빼어난 작품이다. 글씨가 크지도 않으면서 입술이 얄팍하지도 않은데 그 입술이 말하는 것을 모조리 다 읽어버렸다. 독서 시간을 굳이 따진다면  다섯 시간이 걸렸으려나. 장마철에 안팎으로 심란한 와중에 동분서주하면서도 놓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과연 나는 꿈을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도전하고 몸을 혹사시켰나. 무시와 멸시를 당하면서도 온 정신을 쏟아부을 수 있었겠는가. 자문해 보면서 향수의 냄새를 좇았다.

쟝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오만할 만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가지 향기에만 올인했으니 박수는 받을 만하지 않을까.


단지 취득한 방법에 있어서는 인도주의  인간중심사상에는 비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존재 가치인 생명을 빼앗았으니 당연하다.


냄새가 없다는 것은 눈에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지니고 태어나는 냄새가 없이 태어난 그루누이는 짧지 않은 생을 냄새로 고통받고, 벅차며 스스로 자멸을 택했던 걸까.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익숙하지 않다는 시답지 않은 이유를 들어 배척하지는 않았던 걸까. 내가 알 수 없어 두려워하고 끔찍해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나는 없는데 모두가 갖고 있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고 거기에 매몰되어 집착하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다른 이들은 다 갖고 있는 고운 피부를 나 홀로 소나무껍질로 갖고 있다고. 사람들은 징그럽다며 손가락질하고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돌을 던지지 않을까.


예전 한센씨병을 가진 사람들은 동떨어진 소록도로 추방당했다. 저주받았다 하여 사람들이 피했을 것이다.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벤허가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찾았던 동굴 같던 장면을. 그 피부가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이라면 얼마나 고운 피부에 꽂힐까. 그루누이는 저주받지 않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떠난 자리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므로.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외부 세계가 그에게 제공하는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내면이 훨씬 더 놀랍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상상해 본다. 저 피부를 가진 이가 스물다섯 명의 꽃 같은 여자들로 만든 향수를 바른다면? 그래도 단두대에 오르기 위해 마차에서 내린 그루누이를 본 것처럼 모두가 사랑의 현신이 온 줄 환희에 젖어 추앙할 것이다.


탄생부터 시작된 냄새와의 전쟁은 냄새가 없어 사랑받지 못했다. 인간의 냄새가 역겨워 인간과 동떨어진 동굴에서 세상 편하고 자유롭게 살았지만, 결국 그 지독한 냄새는 인간 곁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 역겨운 것을 만들고 입는다. 정체성을 확립하여 생존을 최적화하기에 이른다. 정체성은 사람을 울리고 웃게 만들고 도덕 하게도 부도덕하게도 만드는 것인가 보다. 그 간격엔 인간의 근본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소녀에서 갓 피어나거나 조만간 필 아름다운 여자들의 달콤한 냄새는 그루누이를 미혹시킨다. 몸을 혹사시켜 체득한 향기 제조법을 동원한 그만의 방법인 뒤통수를 후려쳐 즉사시킨다. 그래야만 온전한 향기를 모조리 흡수할 수 있기에. 초자연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그는 살인마가 된다.


냄새가 없어 냄새의 신이 된 그루누이는 냄새로서 인간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모두가 살인마인 그를 마치 대천사 가브리엘 보듯 성스럽게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닿고 싶어 환장한다.

 

뿌듯하고 위대한 그루누이는 스스로를 칭찬한 것도 잠시 정체성에 대해 몹시 흔들린 것일까. 그는 자신의 몸을 사랑에 빠진 향기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식인의 제물로 스스로 존재를 지우고 만다. 마치 이 세상에 나오기나 했는지 의뭉스럽게. 스스로 이 세계에서 흔적을 모두 지워버린 것이다. 냄새의 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짧고 굵게 읽은 소설이 얼마만이던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가 강박처럼 그루누이를 묘사한 낱말이 있다.

일명 진. 드. 기.

무려 작가는 무려 여섯 번이나 썼다. 36쪽, 50쪽, 103쪽, 132쪽, 196쪽, 281쪽이다. 진드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작가인 쥐스킨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진드기에게 있어 생명이란 끊임없이 겨울을 넘기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진드기는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은회색 몸체를 공처럼 말고 살아가는 작고 기분 나쁜 벌레였다.

그는 제몸에서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아무것도 발산되지 않도록 해주는 매끄럽고 단단한 피부를 갖고 있다.

진드기는 고집과 집념으로 몸을 웅크린 채 살아남는다. 짐승의 피가 우연히 나무 바로 밑에 다가올 천재일우의 그 기회를 노리면서.

그 기회가 오면 비로소 그는 웅크렸던 몸을 펴고 떨어진다. 그러고는 그 낯선 고깃덩어리에 달려들어 할퀴고 빨고 깨물고...




타오르는 열정에다 치밀한 계획을 깔고 체계적인 자신의 무기를 손질해서 기술을 연마하면 나도 그루누이처럼 글로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내가 원하는 대로 빨아들일 수 있을까. 그처럼 신동이 아니라서 어려울까.


상상해 보았다.

사람들을 까무러칠 필력을 만들어 주는 키보드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소지하고 있는 키보드에 소년에서 갓 남자가 되거나 될 미남의 피가 필요하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온할까. 요동을 칠까.

미남들이여, 긴장 푸시라.

어디까지나 나의 가정일 뿐이므로.


사람을 먹어 치우다니?

당혹스러운 것은 조금도 죄책감이 들지 않은 것에 그들은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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