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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Nov 09. 2023

월동준비는 다 되었느냐, 돌쇠야

게으른 돌쇠가 움직이다

돌쇠야, 월동준비는 다 마쳤느냐?




요즘 마님은 돌쇠를 부려먹고 있다. 그는 몸 쓰는 일에 참 취약하다. 게다가 부지런하지도 않다. 그런 그도 도끼를 들면 힘깨나 쓸 줄 안다. 누적된 장작 패기로 그에게 요령이 생겼다. 일 년 중 이 시기가 되면 마님을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그가 온 힘을 다한다.


몇 평이라고 말하기 우스운 밭 한 뙈기? 가 있다. 게으른 돌쇠는 있는 밭도 활용할 줄 모르고 놀리기 일쑤다. 다만 그가 마님을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 있다. 고구마 심기이다. 마님과 살기 위해서 귀차니즘이란 고질병을 달고 사는 환자인 그가 호박 고구마를 반나절을 홀로 캤다. 그것마저 안 한다면 마님과 살 수 있는 영광을 어찌  머슴인 그가 쟁취할 수 있겠는가.


겨울이면 뜨끈한 아랫목과 거실의 벽난로가 있는 세컨드 하우스를 자주 찾게 된다. 싸늘한 아파트 바닥에서  또르르 굴러다니는 시골집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지 모른다.

편백나무벽에서 흘러나오는 피톤치드와 군불을 지핀 장작불로  바닥에서 온돌의 힘이 솟아오른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일상의 찌듦에서 틔운 두통이 언제 있기나 했나는 듯 말끔하게 자취를 감춘다.


바야흐로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는 움직임이 둔하고 활동량이 줄어둔다. 초저녁이 지나면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한다. 간식이나 주전부리 뭐 없냐는 거다. 이럴 때는 장작이 불타는 벽난로의 눈빛이 활활 타오른다. 한 옆에 종이 박스에 쟁여둔 호박 고구마의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환상의 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쾌지나 칭칭 나네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작불과 호박 고구마는 흥 좋은 부부 같다. 빛나는 알루미늄 포일은 이때 부스럭거리며 끼어달라 아우성이다.  불속에서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기를 즐기는 어쩌면 그 어떤 것보다 정열적이지만 철이 더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벽난로에서 꺼낸 김이 솔솔 나는 군고구마는 호들갑스럽게 만드는 겉바속촉. 아무리 선비라도 갓 구운 군고마를 들고 체면을 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군고구마는 자고로 푼수같이 철없이 촐랑거리며 먹어야 제맛이다. 이때 살얼음을 살살 띄운 동치미나 아삭한 총각김치와 함께라면 요요현상 아웃, 소화는 문제없다.


돌쇠는 군불을 땔 장작과 군고구마를 즐기는 마님을 위해 장작과 호박 고구마를 잔뜩 쟁여 놓았다. 부디 겨울날 동안 장작과 고구마가 소진되지 않기를. 마님, 월동준비는 드디어 완료했습니다. 올겨울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되겠습니다.

님이 째려보는 눈이 무서운 머슴은 눈과 눈 사이를 좁히고 있다. 미간에 달력이 있기라도 하듯.


'불만이라도 있는 게냐 돌쇠야?'

'아닙니다 마님.'

'그런데 네 미간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럴 리가요. 담배가 잠깐 생각나서 그러한가 봅니다. 마님'

'네 이놈, 금연한 것이 아니었더냐?'

'금연하고 있습죠. 생각이 난다 이 말씀이지라'

'돌쇠야, 넌 나로 부족하더냐?'

'하나 안 부족합니다.'

'그럼 되었다! 고생했다, 쉬거라'

'네, 마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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