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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Dec 20. 2023

첫 소설책을 받아 든 설렘

초여름의 기억을 펼쳐보다

뭉근하게 관조하고 소회 한 휴머니티

 - 정이흔 소설가의 『초여름의 기억』을 읽고 -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매우  솔직하게 과감한 표현도 개의치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와 체험하지 않은 것도, 체험한 그대로 쓴 것도  단 한 줄도 없다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언급하며 시작해 본다.


경험 없이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천재가 아닌 보통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깊은 글을 우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이흔 작가의 갓 나온 소설모음집인 『초여름의 기억』을 읽었다.


술술 읽히는 이 책은 브런치스토리를 통하여 이미 읽은 바 있지만, 책을 통해 활자로 읽는 아날로그는 새록새록하게 다가와 속삭인다.


관계란 사람과 사람의 사이, 모 작가는 그를 일러 사랑의 거리, 배려의 거리라 칭하기도 했다. 정이흔 작가는 초여름의 기억을 통하여 가족과 친구 또는 이웃을 통한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그 경계를 넘나드는 울타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더불어 삼독으로 고뇌하기도 한다. 반면에 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사람으로 치유받고 인정받으며 한층 성장을 이룬다.



의식과 무의식의 병치


잠이 들면 우리는 꿈을 꾼다. 꿈에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다.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날아다닐 수도 있으며, 선악을 넘나 든다. 한창 클라이맥스에 달아오를 때 그때가 흥미진진하지만 함정일 수 있다. 그때는 의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만약 동물로 변했다가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 무의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의식과 합체할 수 없을 것이다. 결정적 순간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자칫하다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요단강을 그대로 건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만 빙빙 돌았다. 고구마를 몇 개 먹은 것 같은 갑갑함이 밀려 올라왔다. 그렇게 끙끙거리고 있던 그는 갑자기 누군가 등을 세차게 때린 것처럼 목구멍에 걸린 답답함이 내려가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도서관의 봄』부분 인용
 


'믿고 싶지 않았던 말이 의사의 입에서 나오자, 나는 밝은 대낮임에도 진료실 창밖에 예의 그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서 벗어나야 하다.

『그림자』부분 인용



기억을 통한 관계의 재발견


젊음은 싱싱하고 뜨겁지만 미숙하고 작은 것으로 쉽게 불씨가 꺼질  있다. '초여름의 기억'의 등장인물은 외향성보다 내향성이 짙다. 응시하고 관심이 가지만 섣불리 고백하거나 마음을 앞서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끝내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고백을 감행하지 않는다. 고백하지 않는다 하여 그 마음이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정이흔 작가는 기억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도출한다.


'너 왜 그때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던 거니? 시간이 흘렀지만, 항상 궁금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그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 청춘이다.

『청춘』 부분 인용


'그러던 차에 뜻밖의 장소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내 시위가 일상이던 시절의 오래된 사진 자료 중 공학관에서 추락사한 여학생을 추모하는 현수막 안에서 그녀가 환하게 웃는' 그해 초여름은 그의 기억 속에서만 나타난다.

『초여름의 기억』부분 인용



체험과 상상을 버무려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도를 한 듯 보이는 정이흔 작가의 『초여름의 기억』은 읽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눈이 따라가고 손은 거드는 한 권이지만 한편 같은 소설모음집이다.


설레는 첫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나의 서투른 이 글로 작품에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초여름의 기억』이 독자에게 각인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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