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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나를 밤이 꺼냅니다

그림 안에 내가 있다

by 은후

<무럭무럭 연두>


나는 이렇게 그림을 시작했다


_평범한 일상에서 예술로 한 발 내디딘 어느 날의 기록




언제부터였을까. 종종 동네 모퉁이의 작은 화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고흐의 해바라기, 수채화와 유화로 그려진 크고 작은 캔버스들은 쇼윈도 안에서 시간이 멈춘 듯 서 있었다. 화실은 나에게 낯설고도 미지의 세계였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영혼을 불사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늘 내 마음을 두드렸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카페에서 종이만 있으면 자유롭게 그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매주 모인다는 어반 스케치 모임이었다. 그들의 손끝엔 붓 대신 사인펜처럼 생긴 붓펜이 들려 있었고, 다 있소에서 샀다는 작고 가벼운 팔레트를 사용했다. 물티슈로 물감을 닦고 다른 색을 바르는 모습에서 미술도 시대와 함께 문명의 힘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돌처럼 동경만 하던 미술이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왔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나를 포착한 지인이 문화재단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문화이음창이라는 낯설지만 창문을 열면 닿을 것 같은 카톡을 친구로 추가했다. 눈에 확 들어온 홍보문구에 이끌려 처음으로 구글폼을 작성했다. 열두 명의 참여자 중 '모양이 없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사람은 한 나뿐이었다.


(고백하자면 형태가 있는 그림을 그려낼 자신감이 부족했다)



단장님과의 짧은 미팅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의 감정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감정을 그리겠다는 참가자는 처음이라면서도 흡족해하던 단장님은 오히려 나를 지지해 주었다.



난생처음 만져보는 유화물감과 스프레이 물감이 신기해 갓난아이처럼 유화용 나이프를 어설프게 더듬었다. 빠르게 구상한 그림 연작(두 개만 그리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단장님이 캔버스 사이즈가 작으니 네 개를 해보자고 독려했다) 시리즈로 같은 크기의 네모난 캔버스를 골라 거침없이 그렸다. 미술에 문외한이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기법이나 지식 없이 글자 그대로 그저 내 감정대로 과감하게 완성했다.



한여름이었다. 에어컨을 켰음에도 이상하게 나는 구슬땀(평소 나는 운동을 하더라도 얼굴에는 땀이 배어날 뿐 흐르지 않는다)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첫 미술 작품은 문화재단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전시되었다. 그룹 전의 참여 작가로서 금빛 수술이 달린 가위로 개막 테이프를 자르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예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지인이 또 한 번 권했다. 이번에는 ‘인생 CJ'프로젝트였다. 4차 혁명으로 인공지능이 예술과 빠르게 융합되는 시대로 NFT 시장이 급속 팽창하는 걸 느꼈던 나는 그렇게 또 다른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고 나눈 시간은 기대보다 따뜻했고 유쾌했으며 뿌듯했다.



또 다른 예술의 바람이 내게 불어왔다. 문화이음창에 막 올라온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퇴근길 초상화 쌀롱” 초상화라니, 익숙하지 않아 더 설레는 단어였다. 참여하고 나서보니, 대상은 원래 2030대 직장인이었지만 나는 예외적(참여자가 예상보다 적은 관계로 지속할 수 있다는 허락을 얻었다)으로 계속 참여할 수 있었고, 작품 수도 많았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한 작품씩 완성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무더운 여름 7월이었다. 익숙한 동네 골목의 아뜰리에에서 4B 연필을 손에 쥐고 처음 선을 그었다. 수업 제목은 “누굴까, 누구지?”였다. 우리는 글로 자기 자신을 묘사했고, 상대방은 그 글만 읽고 얼굴을 상상해 초상화를 그렸다. 낯선 사람이 묘사한 내 얼굴을 연필로 재현하는 초상화라니 어색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귀가하는 길은 가로등과 달빛만이 휘청거렸다. 사람의 발길은 없고 고양이만 내 발소리에 그늘로 숨었다.



기법은 가르쳐주지 않는 입시 미술학원과는 다른 수업 진행에 마음이 풀어지면서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 임한 나는 내 얼굴을 글로 묘사해 보았다. 곱슬 중단발머리, 둥글던 얼굴이 계란형에 가까워진 모습, 필러가 필요 없는 짱구 이마, 작은 얼굴 위에 놓인 송편 같은 귀까지 나를 묘사하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갔다.



글엔 실명이 없어 누군지 정보 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손이 더디 움직였다. 연필과 지우개가 바삐 오갔다. 지우개 똥을 털어내며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완성하려고 그리고 지우며 정신이 없었다. 결과물은 보잘것없었지만, 낯선 참가자가 그려준 내 초상화는 어쩌면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 가장 특별했다.

내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도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다음 수업은 자기 얼굴을 손거울로 보며 그리는 자화상이었다. 1분 안에 그리는 즉흥 드로잉은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 닮아갔다. ‘무엇이든 적응하는 데 시간은 필요한 것이로구나.’ 축적되는 힘을 실감하며 내 그림에 시간을 잊고 있었다. 선 하나로 끊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하는 수업이 기억난다. 선을 이어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얼굴이 드러났다. 30초, 20초, 10초. 초를 세며 그린 나는 내가 아닌 이름 모를 생명체 같았지만, 그것들도 감춰진 나의 얼굴이 아닐까. 이번엔 눈까지 감았다. 결과물이 예상밖이다. 눈을 감는 것이 자화상에 근접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어쩌면 눈이 보이게 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란 자각을 했다.



이번엔 투명 전선을 들고서 격자무늬의 철사 액자에 한 줄 자화상을 그렸다. 그렸다기보다 전선을 구기고 그 부분을 테이프로 고정해 가면서 측면에서 바라보는 자화상을 상상하며 완성했다.


그룹전 전시회서 이것이 네온사인으로 변신하여 어두운 방 안에서 번쩍거리며 나를 드러냈다.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크게 크게 선을 이용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액세서리(팔찌)로 남은 전선을 이용한 것에 나름 점수를 부여하는 관람객의 감상에 생각의 다양성을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내게 속삭였다. “오늘은 내일보다 어려. 마음만은 어린 나, 축하해.”



예술은 그렇게 내 정서를 채우는 역할로 스며들었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은 두려움이 앞섰다. 스케치는 잘했지만 물감으로 망치기 일쑤였고, 결과물은 부끄러웠다. 중학교 2학년, 왼손을 데생한 작품이 미술 선생님의 모델로 제시되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놀랐기 때문이리라. 짝꿍 미나는 스케치를 대충 성의 없이 선을 긋는데도 물감만 입히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의 감탄 소리에 내가 함께했던 잔상이 스쳐가다.


시대가 바뀌었다. 기법보다 개개인의 감성이 대두되는 듯하다. 예술은 잘하고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의 출발점이다. 그림은 그리고 싶다는 갈망의 산물이고, 글은 내면의 사유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둘 다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미술은 재능 있는 사람만의 영역이 아니다. 나처럼 오랫동안 망설여온 사람도, 어느 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은 크지 않아도 된다. 연필 하나, 거울 하나면 충분하다. 일단 예술에 발을 들이면, 삶의 빈틈이 촉촉하게 채워진다. 어느새 미술의 변방에 있던 내가 그룹전을 세 번이나 하게 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예술이 준 깜짝 선물이었다.



지역 커뮤니티를 눈여겨보면 다양한 미술 활동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도 미술에 참여해 보고 싶다면 해당 지역의 문화재단을 자주 들어가 보길 추천한다. 미술 감각이 ㅇ없어도 마음만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라. 서툰 그림도 괜찮다. 나를 만나는 가장 진실한 순간이기에. 예술은 모두를 환영한다.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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