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라는 이름의 수리공
<검고 흰>
잠이라는 이름의 회복 : 느린 속도에 발을 맞추는 용기
어제는 오후의 낮잠을 딱 삼십 분으로 매듭짓고 일어나리라 다짐하며 누웠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은 이미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린 뒤였다. 명료한 휴식을 기대했던 삼십 분은 어느새 두 시간이라는 깊은 침잠으로 변해 있었다. 밝은 오후의 빛 속에서 시작된 잠이 이토록 깊고 검게 나를 삼켜버릴 줄은 몰랐다.
골절 이후 일상이 된 약 복용 때문인지, 혹은 계절이 깊어지는 길목에서 몸이 느끼는 하중 때문인지 요즘은 유난히 잠의 유혹이 진해졌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피로 앞에서 나는 우습게도 매번 비장한 계획을 세운다.
‘잠깐만 자고 일어나 개운한 몸으로 저녁부터 다시 달려보자.’
무색해진 그 다짐은 실천되지 못한 채로 늘 내일의 나에게 무거운 부채로 남겨지곤 한다.
처음에는 의지를 배반하고 쏟아지는 이 잠이 원망스러웠다. 남들(수험생) 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이 마음의 조급함을 부채질했다. 명료하지 못한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생각의 결을 골라본다. 어쩌면 이 잠은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늪이 아니라, 부서진 곳을 붙이고 상처 입은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몸이 스스로에게 처방한 가장 진한 보약이 아닐까.
“잠은 건강이라는 보물을 묶어주는 황금 사슬이다”라고 한다. 내 의식이 잠시 끊긴 그 암흑의 시간 동안, 내 몸이라는 공장 안에서는 수만 개의 세포 수리공이 분주히 움직이며 어긋난 곳을 맞추고 진액을 채워 넣는다. 잠은 그저 고립된 정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예전의 나로, 혹은 더 나은 나로 돌아가기 위해 몸이 행하는 가장 적극적인 회복 작업인 셈이다.
물론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가볍지 않다. 잠에서 깬 위장은 어설픈 소화로 묵직하고 책상 위의 검은 글자들은 젖은 솜처럼 무겁게 머릿속을 휘젓는다. 새벽 여섯 시면 번쩍 뜨이던 아침의 활기는 사라지고 여덟 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꺼풀을 걷어 올리는 스스로가 낯설고 때로는 게으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있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봄에 도약하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한다는 점이다. 공부의 진도가 개미가 핥듯 느릿하고 세워둔 계획이 무모한 욕심처럼 느껴져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비록 페이스는 느려졌을지라도 나는 지금 망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쳐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승리는 패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위로 삼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미미한 발버둥 또한 위대한 승리의 일종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눈부신 속도가 아닌 게다. 잠시 멈춰 선 내 몸의 속도에 기꺼이 발을 맞추는 인내와 용기다.
이 느림보 같은 시간들이 훗날 돌아볼 때 내 몸이 나를 살리기 위해 참으로 애쓰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이 되었으면 싶다. 잠과 나 사이의 조용한 전쟁은 오늘도 계속 대치중이다. 이제 잠을 적군으로 보지 않기로 하자. 한 줄의 문장을 머릿속에 밀어 넣기 위해 다시 눈을 부릅뜨는 이 치열한 순간이 수리가 끝난 뒤에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정교한 준비 과정일 테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회복하고 있으며, 그 느린 걸음조차 결국은 빛을 향하고 있다.
#회복기
#삶의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