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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Aug 14. 2024

2.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여기 있다고

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5년 전 영국. 낮에는 교환 학생으로 수업을 듣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다음번 여행은 어디로 떠날지를 고민하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작은 방의 싱글베드에 누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인스타스토리를 넘기다 우연히 보게 된 너의 스토리에서 손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와. 나 나랑 비슷한 상황인 사람 처음 봐. 누나에게 지적장애가 있음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너를 보며 한국에 있는 여동생을 떠올렸다.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의 힘듦이야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겠지만, 그 속에서 ‘멀쩡한’ 비장애형제로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 너도 꽤나 힘들었겠다. 나도 알거든 그거.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여기 있다고, 네 마음 전부는 몰라도 조금은 이해한다고, 고생했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니었다면 어떡하지, 괜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오히려 기분이 상하진 않을까… 여러 걱정들이 있었지만 나라면, 만약 나라면 주변 비장애형제의 존재가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컸기에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너도 나의 존재를 반가워해 주었다.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가끔 인스타 '좋아요'를 누르던 대학 동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너와 그 후로 부쩍 가까워졌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 전 야간 아르바이트에 열심이던 너의 퇴근 시간과 영국에 있는 나의 저녁 시간이 맞아떨어져 자주 대화를 나눴다. 비장애형제라는 정체성을 계기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하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가족의 삶, 가족과의 미래까지 고민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어렸고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겠다. 꺼내 놓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그럴 것이라는 추측 만으로도 너를 다른 친구들에 비해 특별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시답잖은 농담과 일상 얘기로 친밀감을 쌓았다. ‘나 한국 가면 밥이나 한 끼 하자’ 으레 하는 한국인의 인사치레였던 것이 이제는 진짜로 만나서 밥을 먹어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복한 시절은 순식간에 흘러,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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