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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by 은혜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괜히 너의 아르바이트 장소를 어슬렁거리던 때? 한강을 같이 걷다 내가 비틀거리자 내민 손을 애써 무시했을 때? 그때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만약 그때부터 시작된 마음이라면 조금 죄스러운걸. 그 이후라면 언제 일까. 헤어졌다는 말에 지나가는 길인데 잠깐 보자며 산책했을 때? 나도 힘든 상황에 친구를 위로해줘야 했을 때 조용히 나를 먼저 생각해 주던 모습에? ‘넌 매번 나한테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아’라는 말에 뜬금없이 설렜을 때?


마음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알아차린 때는 그때쯤이 맞는 것 같다. 지난밤 ‘가족행사에 빠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적 있냐’는 너의 메시지와 그 뒤로 이어지는 힘들었던 날의 고백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한 위로를 건넸었다.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 다 한다는 말이 있거든. 넌 또 그때는 하나뿐인 아들이었으니까 얼마나 예뻤겠어. 네가 해야 할 효도는 그때 다 했다고 생각해. 그 후로 20년을 넘게 충분히 착한 아들로 살면서 할 만큼 한 거 아닐까. 그 자리에 누가 있었어도 네가 한만큼 못했을 걸. 다른 사람은 대충 열여섯 살쯤 질풍노도로 엇나가지 않았을까. 착한 아들 20년 넘게 해 놓고, 자기감정 지키려고 가족이랑 거리 두는 건 이제 막 시작인데 그걸로 죄책감 느끼면 쌤쌤이가 안 되잖아. 물론 마음이 안 좋겠지만 너무 죄책감 가지지는 마. 너 잘못 없다. 조금만 심란해하고 어서 자.]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한 답장에 뜬금없이 심장이 뛰어왔다. 이거 뭐야. 왜 이래. 아…. 큰일 났다. 좋아하네 나. 좋아하네. 망했다.


[넌 매번 나한테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아. 대학교를 굳이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 와서 제일 잘 한 건 너를 만난 거야. 계속 심란했는데 싹 가셨네. 고맙다.]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는 듯한 수식어를 한참 바라보다 괜히 손가락으로 몇 번 쓸어보았다. 내내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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