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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Aug 14. 2024

1.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괜히 너의 아르바이트 장소를 어슬렁거리던 때? 한강을 같이 걷다 내가 비틀거리자 내민 손을 애써 무시했을 때? 그때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만약 그때부터 시작된 마음이라면 조금 죄스러운걸. 그 이후라면 언제 일까. 헤어졌다는 말에 지나가는 길인데 잠깐 보자며 산책했을 때? 나도 힘든 상황에 친구를 위로해줘야 했을 때 조용히 나를 먼저 생각해 주던 모습에? ‘넌 매번 나한테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아’라는 말에 뜬금없이 설렜을 때?


    마음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알아차린 때는 그때쯤이 맞는 것 같다. 지난밤 ‘가족행사에 빠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적 있냐’는 너의 메시지와 그 뒤로 이어지는 힘들었던 날의 고백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한 위로를 건넸었다.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 다 한다는 말이 있거든. 넌 또 그때는 하나뿐인 아들이었으니까 얼마나 예뻤겠어. 네가 해야 할 효도는 그때 다 했다고 생각해. 그 후로 20년을 넘게 충분히 착한 아들로 살면서 할 만큼 한 거 아닐까. 그 자리에 누가 있었어도 네가 한만큼 못했을 걸. 다른 사람은 대충 열여섯 살쯤 질풍노도로 엇나가지 않았을까. 착한 아들 20년 넘게 해 놓고, 자기감정 지키려고 가족이랑 거리 두는 건 이제 막 시작인데 그걸로 죄책감 느끼면 쌤쌤이가 안 되잖아. 물론 마음이 안 좋겠지만 너무 죄책감 가지지는 마. 너 잘못 없다. 조금만 심란해하고 어서 자.]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한 답장에 뜬금없이 심장이 뛰어왔다. 이거 뭐야. 왜 이래. 아…. 큰일 났다. 좋아하네 나. 좋아하네. 망했다.


 [넌 매번 나한테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아. 대학교를 굳이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 와서 제일 잘 한 건 너를 만난 거야. 계속 심란했는데 싹 가셨네. 고맙다.]


    ‘무슨 이불 덮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 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는 듯한 수식어를 한참 바라보다 괜히 손가락으로 몇 번 쓸어보았다. 내내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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