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이라는 영화가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장혜정 님의 탈시설기를 담은 다큐영화로, 혜정 님의 언니인 장혜영 님이 제작하셨다. 영화감독보다는 국회의원으로의 장혜영 님이 익숙한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 (맞다 동일인물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대학교의 특수교육학개론 수업 과제를 위해서였다. 리포트를 쓰기 위해 교수님이 제시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너무 무서워서.
나에게도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다. 우리 언니는 시설이 아니라 본가에서 같이 지내고 있어서 같은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결국 내가 언니의 주보호자가 되어야 할 시간이 언젠가 다가올 것이기에 혜영 님과 혜정 님의 자립이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무서웠다. 나는 혜영 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저렇게 인내심 많고, 책임감 있고, 동생을 위해 정치에 나서는 멋진 여성이 아니어서. 나는 도무지 언니랑 같이 살 자신이 없어서.
물론 이런 얘기를 리포트에 구구절절 적지는 않았다만, 아무튼 이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른이 되면’이라는 영화와 혜영, 혜정 자매의 이야기는 나에게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여느 때처럼 SNS 피드를 훑어 넘기던 날, 그림체가 귀엽고 몽글몽글한 국제결혼 이야기를 담고 있어 구독하던 SNS툰 작가님의 근황이 업로드 됐다. ‘한국에서 동생들이 왔어요’ 동생들이 계셨구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넘긴 사진에는 혜영 님과 혜정 님이 있었다. 띠용. 놀라운 세계관 결합..! 잠시간 멍해졌다. 언니가 또 있었어? 그러고 보니 혜영 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도 ‘생각 많은 둘째 언니’였다. ‘둘째’ 언니. 당연히 첫째 언니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한 번도 못했을까? 세계관 결합의 충격을 해소하고 상황을 정리해 보니 첫째 언니는 국제결혼을 해서 파리에 계시며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고 계시고, 둘째 언니는 한국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아 그 사람들이 자매였구나. 신기하네’하고 끝날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이 세계관 결합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가족을 떠나 멀리 사는 것에서 크나큰 자유로움과 그만큼의 죄책감을 느꼈던 나였기에, 첫째 언니 장혜원 님의 삶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충격 뒤에는 우울이 있었다. 당시 상담을 해주시던 상담선생님께 이 일을 말하면서 울었다. 저는 첫째 언니도 둘째 언니도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언니를 떠나 멀리서 내 삶을 꾸리는 것도, 언니를 지키고 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못하겠어요. 시간은 (아직 멀었다지만) 점점 다가오는데 저는 어느 쪽도 될 수 없고 앞날은 너무 막막해요. 선생님은 나에게 ‘혜은 씨가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될지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혜은 씨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해주셨다. 지금은 그때만큼 충격적이고 우울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가끔 고민되는 부분이다. 나는 혜원 님과 혜영 님 사이의 어떤 자매가 될까. 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