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에 대하여

막내의 열성경련

by 엄마참새

홍천에 있는 동생 집에 방문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름에도 시원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강원도도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지내기 어렵다고 한다. 동생네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계곡에 물을 담그고 물놀이를 시작했다. 주말엔 물놀이장을 찾았다. 남편과 동생은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나와 엄마, 올케는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마치고 폰을 켜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있었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동생은 막내가 구급차를 타고 큰 병원에 갔다며 급한 상황에 전화가 바뀌었고 다시 연락할 일이 있으니 우선 전화를 끊어 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혼란스러웠다. 남은 아이들은 엄마와 올케에게 맡기고 동생과 함께 아이가 있다는 응급실로 향하였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되뇌며.


나중에 남편에게 얘기를 들으니 막내는 물놀이는 하지 않고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형들과 있던 막내가 갑자기 낯선 사람들 쪽을 향해 걸어가더란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달려가니 아이의 눈에 초첨이 이상하고 침까지 흘리고 있었단다. 놀란 마음에 아이를 들쳐 안고 응급요원에게 갔는데 열이 있고 오전에 떡을 먹었다는 말에 하임리히법으로 응급조치를 하며 아이의 숨을 확인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숨을 쉬었던 것도 같은데 그때는 호흡이 미약해서 명확하지 않았고 구급차 안에서는 아이를 재우면 안 된다는 말에 계속 눈을 감으려는 아이를 깨우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구급차를 타고 간 홍천의 병원에서는 호흡 회복 여부만 확인하고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조치가 없으니 강원대학교병원으로 이송을 권하였다.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병원은 응급의료센터에 소아 응급환자를 위한 전문 의료진이 있었다. 검사 결과, 아기의 심장은 부어 있었고 폐는 흐릿했으며 부정맥도 의심되는 상태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이가 깨어났을 때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의사는 열성 경련 증상으로 보인다고 했으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였다. 중환자실 내 격리 병실이 있어서 보호자 1인이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었고 잠에서 깬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을 하고 안아달라고 하였다. 아이를 안고 친구 이름을 묻고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며 대답하는 목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엔 일반 병실로 옮겨 심장 초음파와 뇌파 검사 등 정밀 검사를 하고 지속 관찰이 이어졌다. 3박 4일의 강원도 일정이 6박 7일로 길어졌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이의 발은 반질반질한 조약돌 같았다. 작고 매끈한 발을 매만지며 이 작은 발을 만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였다.


“열이 떨어지고 뇌파가 괜찮으면 퇴원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뇌파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을 주실 거라던 교수님께서 직접 병실로 오셨다. “깨끗해요. 괜찮습니다.” 아이를 다독이시는 노교수님의 말을 듣고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퇴원준비를 하였다. 담당선생님은 퇴원 이후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아이의 상태를 끝까지 세심히 살펴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아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열성경련은 영유아에게 비교적 흔한 증상으로 고열로 인해 뇌에서 오류가 생긴 거라고 한다. 유전적 요인이 많아서 가족력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가족 중엔 그런 일이 없었고 일반적인 열성경련 증상과 달리 아이는 걸어서 이동하였기에 상황을 더 유심히 살펴본 것 같았다. 학령기가 되면 대부분 자연스레 증상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한 번 증상이 있던 아이는 이후에도 나타날 수 있어서 열이 나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단다.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일이었다. 아이가 넷이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이 이렇게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그 때는 놀랐지만 지금으로서는 괜찮은 일이 되어버린 일을 말이다. 그치만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을까. 나도 모르게 스치듯 넘어간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렇게 돌아왔으니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편 그렇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면 무겁다. 그저 일상의 기록이지만 이런 기록이 누군가에겐 안도를 주겠고 누군가에겐 꿈같은 일이 될지 모른다. 고비처럼 넘어간 위기에서 나오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개인적인 언어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의 생각이 개인의 경험치, 나를 넘어서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일이, 나만의 안도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이해와 연결로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병실에 남아 아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두 손을 모은다. 아픔이 일상인 삶일지라도 다독임과 안도의 마음들이 찾아오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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