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사
어머니께서 이사를 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을 내놓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가버려서 급하게 구한 집이 23층 아파트였다. 어머니 평생 가장 높은 집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새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꽃을 사고 싶다고 했다. 꽃보다는 식물이 낫지 않을까 이야기하며 근처 꽃집에 들렀는데 문이 닫혀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가게 되었다.
아파트는 산보다 높았다. 집에서 산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지면서도 마치 고공비행 중인 비행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홀로 이런 경치를 보고 있다면 텅 빈 하늘에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가득한 해였다. 베란다에 햇볕이 오롯이 들어찼다. 아무래도 식물을 사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렵사리 검색해서 근처 꽃집에 연락이 닿았다. 주인은 출타 중이었으나 지인을 통해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였다. 문을 열어준 지인이 식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서 주인과 영상통화를 하며 뱅갈 고무나무와 칼라데아 화이트스타를 고를 수 있었다.
흙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마르면 겨울엔 한 달, 여름엔 열흘 정도 간격으로 물을 주면 된다고 알려드리니 어머니는 “그리 오래냐” 하셨다.
키우기 좋은 식물이 좋을 줄 알았는데 물이 띄엄 줘야 한다는 말에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다. 삼 형제를 키웠고 여태껏 시아버님을 돌보는 어머니께 그저 손이 덜 가는 게 좋을 줄 알았는데. 키우고 돌보는 이는 수고로움 없이 귀한 것이 오지 않는 것을 아는 걸까. 손길이 효용을 느끼게 하는 걸까.
어머니의 베란다에는 작은 은행나무와 고추나 방아 같은 작물이 있다. 선물로 들여온 것이 아니라면 굳이 화분을 사거나 모종을 구입하지는 않으셨고 빈 흙이 있으면 먹던 씨앗을 심어다가 가꾸곤 하셨다. 어머니의 살림은 단순하고 언제나 정돈되어 있다. 나중에 먹으려고 쟁여두지 않으니 겹겹이 쌓인 물건도 없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어질러진 것도 없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다. 어머니의 물건처럼 어머니의 시간도 그럴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지만 꼭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으신다. 그런 어머니에게 이따금씩 물을 줘야 하는 식물은, 매일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쩌면 가만히 두어도 되는 것으로 버려두는 것으로 어겨졌을지 모르겠다. “물은 자주 주고 매일 들여다봐야 해요. 조금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도 맺을 거예요.”라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어린이집 수료식날 선물로 받아온 삼색제비꽃이 올봄 내내 현관 앞에 피어있었다. 물주는 걸 놓치면 금방 시들해져서 자주 물을 줘야 했는데 시들시들하다가도 물만 주면 금세 생생해지는 모습이 기특했다. 반려식물이란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살피며 돌보게 하는 것, 시듦과 반짝임으로 삶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키우기 쉬운 식물을 사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키우려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자라는 건 없으니까. 제대로 키우려면 더 자주 물을 주고 손이 많이 줘야 하는 것을 고르는 게 맞을 것 같다. 뭐든 제대로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생명은 쉼 없이 변한다는 걸. 끝없이 요구한다는 걸 말이다. 살아있는 건 소홀하지 못하게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잊어버리고 놓치는 게 일상을 삶을 살다 보니 뭐든 편한 게 좋은 거라 여기는데 살아있는 것은 쉬울 수 없다. 쉽게 키우려는 마음이 얼마나 책임감 없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다시 누군가에게 식물을 선물하게 된다면 키우기 쉬운 것이 아니라 물도 좋아하고 해도 좋아해서 자주 물을 주고 볕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줘야 하는 것을 골라야겠다. 오늘은 또 어떤 꽃이 피었나 궁금해서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고 발걸음을 재촉해서 들여다보게 하는 것, 매일 물 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버려 번거로워도 나 없으면 안 되는구나 싶어서 번거로움이 도리어 힘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