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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Jul 13. 2020

커피의 계절

- 자작시 5


어릴 적 책걸상 색과 비슷한 재료들

누런 나무와 거무스름한 쇠로 만들어진 

칼리타에 커피 원두 한 웅큼

톱니 위로 쏟아 넣고 

다시 반 웅큼을 밀어 넣는다


드르륵 드르륵 톱니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눈을 들어 창 밖으로 시선을 준다

나무 가지는 바람이 살랑이고 

시선은 그 나무 사이로 흘러간다


나무 가지 틈 사이로 마음을

혹은 마음의 짐을 밀어 넣는다 

애매한 마음의 정체를 거기애 두고 

조금은 성글게 성글성글 갈아낸다


이상 기후로 두어달 미리 달궈진 거리의 열기에

한 여름이 아님에도 녹다 못해 타버리는 마음


계절이 바뀌고 커피 한 웅큼 넣고

반 웅큼은 아픔으로 구겨 넣는다

까맣게 타버린 커피에 

갈등을 한 잔 진하게 내린다


축축한 여름은 추억을 눅눅하게 하고 

커피를 쓰게 한다

입가에 맴도는 마지막 맛은 

나의 과거만큼이나 쓰다


커피 향이 퍼지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나의 과거는 커피잔에 내렸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난다


문을 열고 나서는 길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내리쬐는 햇빛

창창한 빛에 눈을 찡그리며 

가을의 한 자락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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