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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Nov 02. 2019

며느리라는 듣보잡을 보았나

나에 대한 기대를 나에게 내가 하기로

예전에 꿈버클럽에서 어떤 엄마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분도 엄마로, 주부로, 아줌마로 있다가 자신의 꿈을 찾아서 뒤늦게 일을 시작하여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그 인터뷰에서 나왔던 내용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시집을 왔더니 내가 누구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고,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았더니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통로, 생물학적 육체의 역할로 좁아진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고 말이다. 수유하기 위해서 가슴을 공중에 훤히 내놓고 누워있으면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조차도 머릿속에서 사라진다고 말이다. 


이 말에 나 또한 엄청난 공감을 했다. 시댁에 가면 나는 박사도 작가도 선생도 아닌, 밥 차리고 치우는 사람, 애들 보는 엄마, 아들을 내조하는 조력자였다. 가족 내 모든 대화의 중심에 며느리의 일이 주제로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댁 어른들의 근황, 남편의 직장 이야기, 아이들 자라는 모습 등에 대해 대화를 하고 나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주제가 전환된다.


나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시고 나의 일상과 미래 계획과 사회생활에 대해 물어보신 다면, 그건 더 곤란할 것 같다.  질문이 들어온다고 해도 자세하고 진지하게 시댁 어른께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집안일과 육아를 등한시한다는 말로 들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말씀드리기가 힘들다. 돈도 안 벌면서 공부하고, 글 쓰고, 콘텐츠 만들고, 엄마들 만나는 것이 과연 납득이 될까? 집안의 재산을 축내가면서 자신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실까? 실제로 시댁 어른들이 나에게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는 나 스스로 검열을 하고 나의 계획과 하고 있는 일을 숨겨 버린다. 


문제는 그렇게 숨기고 드러내지 않자, 나 자신도 명확히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에게 하는 기대에 따라서 어느 순간 맞춰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 중에 ’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로젠탈 교수는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을 A, B 두 반으로 나눴다. A반의 선생님에게는 이 반에 속한 아이들이 우수하고 창의적인 아이들이라고 알려주었다. B반의 아이들은 무언가 부족하고 학습에 열의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지식을 알고 각 반에 들어간 선생님들은 그 내용에 맞게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고, 반응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A반 아이가 실수를 하면 선생님은 ‘너는 원래 잘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이구나.’라고 반응하였다. B반의 선생님은 ‘너는 이것을 잘 못하니까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기대가 무슨 영향이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 아이들의 성적에 차이를 보였다. 늘 긍정적이고 자부심이 있는 아이들로 여겨진 아이들은 성적이 더 높았다. 


가정 내에서 나에 대해 더 큰 꿈을 꾸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더 큰 꿈과 도전이 가족들에게는 불편함과 시련이다. 엄마가 밖에서 무언가를 시행하고, 그래서 좌절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침체되고, 또 회복되어 더 성장하는 과정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감당해 주지 않는다. 엄마가, 아내가, 며느리가 자신들의 그 과정을 지원해 주길 바라지. 혼자서 정신승리하겠다고,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힘이 든다. 당연한 제안들을 어렵게 거절해야 하고, 실망감과 분노를 조용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이 모든 흐름을 억지로 바꿔야 하는 것에 힘이 든다. 그러다 보면 지치거나 그냥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자신을 다른 사람의 관념에 맞춰버리게 된다.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꿈 하나를 갖고, 이것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여러 사회적 환경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면, 본 게임을 시작해 보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선택과 결심이 필요하다. 어쨌든 결혼을 하고 기존의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처신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가족만큼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내가 아프거나 사고가 생겼을 때, 나를 거둬 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을 품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에 매몰되지 말고, 나를 세워가겠다는 그런 결심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기대를 나에게 내가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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