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궁은정 WiseFrame Nov 02. 2019

평생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비결

일부러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는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덕불고 필유린)

논어, <이인 편>


이것은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나는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말의 어감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덕불고, 덕불고, 덕불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대 뇌어 보아도 어감이 참으로 좋다. 


이 말은 신영복의 ‘강의’라는 책에서 발견했다. 평소 동양철학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따로 읽을 시간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진짜 시간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것에서 우선순위가 밀려서 마음으로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진짜 책을 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아이 낳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책을 펴게 되었다. 게다가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께서 인문고전을 좀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해서 함께 읽기로 했다. 


몸이 천근만근 늘어지는 월요일 아침에, 남편과 아이 보내고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일주일 동안 읽은 부분을 서로 설명해 주었다. 나는 ‘강의’라는 책을, 그분은 ‘관자’를 읽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딱히 없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독서모임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 당기는(?) 것부터 읽게 되었다. 


이 독서모임이 일 년 정도 이어졌다. 그동안 강의와 관자를 야금야금 읽어갔다. 그 사이에 각자의 관심사와 관련된 책도 곁들어 읽으면서 꾸준히 독서를 했다. 이 일 년 동안의 월요일 아침은 충만한 시간이었다. 많은 책을 읽어대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더듬어 간 책이 나의 인식과 삶을 조금씩 물들였다. 이해관계가 걸린 것도 아니고, 몸이 편해지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지속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이 주는 의미,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지속하게 되었다. 공자가 학습하고 벗을 만나는 것을 기쁨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니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총제적인 자질이 모두 덕이라는 한 단어에 들어있는 것 같다. 그것은 좋은 성품일 수도 있고, 능력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 혹은 공동체적 가치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함께 더불어서 좋은 것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 


이것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거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 속에 끼어 있어도 외롭고 공허해지기 쉽다. 사람을 아무리 부둥켜안고 있어도 허전할 수 있다. 무언가 삶에 앙꼬가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과 단순히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방향성 없이 사람들을 만나면 깊은 상처만을 얻고 만다. 나의 어려움과 어두운 면을 상대가 해결해 주길 바라면 더욱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상대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자꾸 나쁜 것을 투척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대신 내가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잘게 소화를 해주고, 그 문제를 담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편히 쉬며 머물 것이다. 어두움이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기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어주고 능력을 발휘하여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된다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걸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마련일 것이다. 

일부러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떠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쇄된 공간에 오롯이 앉아만 있어도 안된다. 그러나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찾아서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헉헉거리며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덕이 있는 내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군중이 아니라 진짜 서로에게 존재하는 사람이. 


그러기 위해서는 충만한 시간을 많이 보낼 필요가 있다. 매 순간 사람을 수단으로 쓰지 않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나 자신이 나를 잘 돌보아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정념을 다해서 탁월해지도록 나 자신을 갈고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서서히 인생에 나 자신을 뜨겁게 녹여가는 그 과정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외롭지 않고, 허하지 않고, 세상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이전 12화 남편, 나의 사랑스러운 파트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