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문장

by 은진

브런치에 첫 연재 시리즈를 막 마쳤을 때다. 한동안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어려운 숙제를 끝낸 것처럼 시원했고, 더 이상 짜낼 밑천이 떨어졌다는 핑계 아닌 핑계도 있었다. 이대로 쉬고 싶었다. 다행이라면 그 멈춤이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써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가벼웠고, 밤마다 괴롭히던 불면증도 조금 누그러졌다. 남들이 보면 대단한 작가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쓰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책상에 앉아 쓰고 또 썼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대단한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쓰는 즐거움보다는, 발행 버튼을 누를 때 찾아오는 짧은 평온함에 매달리고 있었다.


같은 문장을 열두 번쯤 고쳐 썼다. 단어를 바꾸고, 순서를 뒤집고, 쉼표를 지웠다가 다시 찍었다. 열심히 했다는 만족감도, 잘 쓰고 있다는 뿌듯함도 잠시뿐이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마음속 깊은 곳까지 피로감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쓰려고 매달리는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 멍해지는 날들이 늘어갔다.


이 정체된 멈춤에 불을 지핀 건 책 한 권이었다. 양귀자의 『모순』은 카페 앞을 지나다 진하게 풍겨오는 커피 향처럼 내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 카페의 문을 열고 싶어질 만큼 강렬했다.


빗방울을 피해 처마 밑으로 몸을 들이고, 처마를 내준 꽃집에서 장미를 사고, 마침 담배를 사러 온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툭 건네는 그 일상의 한 페이지. 글이 비 오는 거리를 직접 걷는 것 같았다. 모든 단어가 오랜 고민 끝에 제자리를 찾아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을 바쁘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한 문장 읽고 멈추기를 반복하느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게 한참이나 걸렸다. 별것 아닌 장면들도 자꾸 입안에 넣고 곱씹게 되었고, 인물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나는 연필을 들고 생각이 머무는 문장 밑에 줄을 긋고 또 그었다.


전에는 밑줄 하나 없이 '별로'라는 평을 스스럼없이 내리며 책을 덮을 때도 있었다. 작가가 그 문장 하나를 위해 며칠 밤을 지새웠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 문장이 왜 여기에 놓였는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글쓰기가 얼마나 더디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이제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덮어두었던 『모순』의 표지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회색 전깃줄 위로 보라색 새 두 마리가 서로 반대편을 보고 앉아 있었다. 새가 보라색이라니 참 묘한 선택이다 싶었다. 내게 보라색은 늘 모호한 색이었다. 빨강의 열정과 파랑의 냉정함이 뒤섞인 그 색감이, 쓰고 싶은 열망과 쉬고 싶은 권태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내 마음과 꼭 닮아 보였다.


두 마리 새는 서로 등을 돌린 채 다른 곳을 보지만, 결국 전깃줄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발을 딛고 있다. 쓰고 싶어 안달 나는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 상반된 감정이 지금 내 안에서 함께 버티고 있는 것처럼.

즐거움과 버거움이 한데 섞여 있는 이 상태가, 어쩌면 보라색이라는 색깔 자체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이 두 마음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감정의 갈림길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나아갈지 머무를지 고민하는 이 막막한 기분을 조금 더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 마음속 보라색 새가 충분히 쉬고 다시 날갯짓을 시작할 때까지, 혹은 내 생각의 모호함을 담아낼 '보라색 문장'이 어느 날 슬그머니 찾아올 때까지.


거의 한 달을 그렇게 쉬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다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억지로 불러낸 의무감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가만히 따라가 보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여전히 한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때로는 쥐어짜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즐거워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