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일 Sep 01. 2024

나는 내가 너무 예뻐서

아빠가 어느 날 사다 놓은 검은색 디지털카메라 하나

셔터를 누르면 그 시간 속 장소만 멈춰 보이던 게

신기해서 보이는 것마다 셔터를 눌렀지

그 이후로 내 친구가 된 카메라

핸드폰도 가질 수 없었던 그 시절

연락할 친구 하나 없어서 카메라를 들었지


내 사진을 찍는 게 좋아서 여러 가지 표정을 짓고

이 사진은 남겨두고 저 사진은 지우고

그렇게 내 얼굴 사진은 100장이 넘어갔지

나는 내가 너무 예뻐서 카메라를 들었네


그렇게 밝은 웃음 잃어버릴 줄 모르고

내가 예쁜 것만 알아서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네

착한 마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을 줄 알고

계속해서 나를 사랑했네


그 사랑이 착각인 줄도 모르고 사랑했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나는 행복할 수가 없어서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네


앞으로 끊임없이 초라하게 살 줄도 모르고

나는 내가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네

나는 그 카메라가 너무 좋아서 매일 셔터를 눌렀네


이제 나를 담을 수 없는 그 카메라에

내가 제일 예쁘게 나와서 행복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