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eason 1

여름의 끝을 잡고 나의 혼술과 우리의 홈술을 위하여

한 잔의 완벽한 행복 : 익산 수제맥주집 '솜리맥주' / Editor.녕

by Local editor


"어디선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여름향기를 느끼며 편의점 가는 길은 그 해 첫여름 산책이다. 그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편의점으로 휘익 방향을 트는 일 역시,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그 해 여름 나들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발걸음이 좋아서다. 그 발걸음 끝에 시원한 맥주가 있어서다." / 「아무튼 여름(김신회)」 p.36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각자의 감각이 있다. 어떤 이는 계절마다 주는 향이 있다 했고, 어떤 이는 식물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며 휙휙 지나 버리고 마는 계절을 알아차린다고 했다. 그 밤, 나는 한동안 들을 일 없겠다 생각했던 '여름밤 산책할 때 듣기 좋은 노래'와 함께 설렁설렁 맥주를 사러 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불쑥 '진짜 여름이네' 싶었다. 우습게도 나는 '술'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것이다. 쨍한 여름이 다가오면 머리가 띵! 하도록 살얼음이 낀 맥주가, 바람이 찹다고 느껴질 때쯤엔 아무 데나 밖에 앉아 뭐든 마시고 싶어지곤 한다. 노상이 불가할 정도로 오들오들 추워지고 나면 계절과 함께 관심도 바글바글 끓인 뱅쇼로 넘어가고.


하지만 나는 술 한 모금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게 지고 한 시간에 맥주 한 캔이면 취하는, 일명 알쓰 혹은 술찌 또는 (술값을 많이 안 들이고도 금세 취할 수 있어) 가성비가 좋은 사람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첫 한 모금을 실패하고 나면 나머지 모금을 소화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결코 한 잔도 허투루 마실 수가 없다. 단 한 잔에도 완전한 행복을 꽉꽉 채워줄 수 있는 술을 마시고 싶다. 한 잔의 완벽한 행복을 위해서는 그 자체의 맛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처럼 뭘 모르는 사람에게는 술맛 나게 하는 분위기와 사람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강제성이 부가되어 다수가 우르르 마시는 술자리에선 한두 잔도 마시지 않은 채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면서 남의 차 대리만 주구장창 부르는 역할을 자처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술기운을 핑계 삼아 낯간지러워하지 못했던 진심과 서로의 거리낌을 주고받는 자리는 매 순간 짠-을 외치게 한다. 숱하게 술잔을 부딪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결국 온전한 그 순간들로 가득 채워진 완벽한 술잔들을 채우고 또 채우고.



테이블을 몇 개 놓을 수 없는 작은 술집을 좋아하는 데에도 그런 이유가 있다. 회식이나 회식, 또 회식 같은 것들로부터 협소한 공간을 핑계 삼아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유지하며 알딸딸한 기분을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서성이고 기웃거리게 하는 모퉁이가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도 거뜬히 가는 동네책방 두 번째 집에 가려면 꼭 남부시장 주차장을 지나 그 모퉁이 맥주집 '솜리 맥주'를 먼저 만나야 한다. 지금 당장 마시지도 못할 맥주가 생각나 기웃거리기도 하고, 오며 가며 마주하는 사장님과 눈인사를 하게 될까 싶어 서성이기도 한다. 테이블은 2-3개 정도, 최대 인원은 8명으로 제한되는 작은 사각형의 공간이다 보니 '자리가 있을까, 우리 오늘 맥주 마실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게 앞을 기웃거리고 서성이던 습관일 수도 있겠다.


솜리 맥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루틴이 있는데, 먼저 두 번째 집의 오픈 시간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한다. 다 모이고 나면 근처 막창 전골 맛집인 삼양 순대에서 식사를 때우고(라고 하기엔 양껏 만족하며 허겁지겁 먹긴 하지만) 솜리 맥주의 오픈 혹은 빈자리를 기다린다. 이미 막창으로 가득 찬 배가 터질 것 같지만 우리는 치킨 라거에 깨통닭 반마리를 포기할 수가 없다. 이제는 청양고추감바스와 매콤한 골뱅이무침도 생겨서 한참을 메뉴판을 노려보며 고민해야 한다. 열 시 땡! 무엇을 먹고 마시든 배가 잔뜩 부르고 왁자지껄해져서는 서비스로 챙겨주신 봉지 팝콘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온다. 딱 기분 좋은 만큼만 마시고 적당히 왁자지껄해져 집에 돌아가는 그 열 시와 열한 시의 신데렐라 같은 귀가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행운의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다소 눈치가 보이는 일이 되자 포장된 캔맥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퇴근길에 놓여있는 모퉁이 가게란 아주 위험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르고 나면 한 캔을 사기엔 정이 없어 두 캔을 사기도 하고, 집들이 선물이라는 핑계로 4캔에 만원 맥주처럼 취향대로 골라마실 수 있도록 치킨 라거, 바닐라향이 나는 밀키 바이젠, 청량함이 훅 느껴지는 프레쉬 페일 에일 등 여러 종류를 골라 담기도 한다. 무거워진 봉투를 흔들며 돌아가는 길이 그리고 맥주를 들이밀었을 때 급격하게 밝아지는 얼굴들을 보는 게 어찌나 기쁜지.



비록 사랑하는 여름 맥주의 계절은 끝났지만

이내 바람이 살랑 부는 테라스를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을 거나하게 맞이하며

이 여름의 끝을 잡고 나의 혼술과 우리의 홈술을 위하여,

한 잔의 완벽한 행복을 가득 채워 건-배.



*Place & Mood*


✔️ 솜리 맥주 insta@somri_craft_beer

: 화요일-일요일 17시~24시 / 월요일 휴무

: 익산 남부시장 새마을 통닭 옆 (전북 익산시 평동로 11길 12)


✔️ verr베르 insta@verr__shop

: 전북 익산시 무왕로 25길 13 1층(제일5차 정문 옆)

: open 화요일~일요일 12시~21시 / 월요일 휴무

*point! 나의 혼술 우리의 홈술에 분위기 채우기 ; 와인보틀샵


✔️ 이유 있는 술집 insta@2you_bar_iksan

: 전북 익산시 고봉로 18길 71

: open 월요일~금요일 15시~20시 / 토요일·공휴일 13시~21시 / 일요일 휴무

*point! 언제나 오리지널은 빠질 수 없어서 ; 전통주보틀샵


✔️ 읽는 내내 맥주 생각이 간절했던 책 ‘아무튼, 여름’과 음악 노리플라이의 ‘끝나지 않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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