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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05. 2024

기억에 남는 동료

방귀선생님

작년 봄.

가게에 한참 동안 직원이 구해지지 않아 매일 새로오는 스페어선생님들과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내일은 다른 선생님이 올 거야. 나이가 60대고

일은 잘해. 그런데 네가 놀랄까 봐 미리 말해주는 거야 일하다가 가끔 방귀를 뀌어~ 나도 어제 같이 일하다가 깜짝 놀랐어 너는 놀라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음날 출근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먼저 가게 나와서  손님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고 60대라 하기엔 나이도 훨씬 더 들어 보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로 쪽진 머리를 한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선생님이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점장님 말을 빌려 써보자면,

시골 깡촌에서 밭을 메다온  할머니 같은 분이 나를 맞이했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태연한 표정으로 서글서글 싹싹한 말투와 표정을 담아 환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오늘 도와주시러 오신 선생님이 시군요. 잘 부탁드려요~”


“네. 저도 오늘 하루 잘 부탁해요”


선생님은 외모와는 다른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목소리와  말투로 내인사를 가볍게 받아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40여 년 전 20대 때 서울의 한 구청에서 구청장 비서일을 몇 년간 하셨다고 한다.

그 시절 몸에 배어 있는 말투와 목소리는 할머니처럼  보이는 겉모습을 많이 가려 주었다.


같이 일하면서 손님이 없는 시간엔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는데,

와! 아는 것도 많고 삶의 대한 철학도 있고 뭔가 이야기를 더 듣고 싶고 배울만 한 게 많은 어른이라 느껴졌다.

특히 종교적인 나의 고민과 갈등, 결혼생활, 부모의 역할, 자식의 도리 같은 삶의 여러 부분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소가 되었다.


처음 만났고 나이차이가 많이 났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선생님과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겉모습과 첫인상으로 판단하면 안 되나 보다 하고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런데 내가 잊고 있던 한 가지!

점장님이 내게 놀라지 말라고 미리 귀띔해 준 말이  있지 않은가!

마침 재밌는 수다가 끝나갈 때쯤  손님들도 차례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각자의 경대 앞에 손님을 앉혔다.


10평 남짓되는 작은 가게 안에 경대가 나란히 3개가 놓여 있었고 가운데 자리를 빼고 양쪽 끝에 한 자리씩 고객을 앉혔다. 잠시뒤 고객과 상담을 마친 우리 둘은 조용히 사각사각 고객님의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가게 안은 조용히 가위질 소리와  이발기 소리만 나고 있었다.


‘뿌우우 우웅~~ 뿡 뿡’


갑자기 울려 퍼지는 민망하고 걸쭉한 소리…


’앗! 어제 점장님이 말씀하신 선생님 방귀구나… ‘


놀람반 민망 함반 더하기 당혹함 뒤에 속에서 올라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가볍게 ‘뽕’ 하고 소리를 내도 민망한 상황에

‘뿌우우 우웅~~’ 심지어 이어서 들려온 ’뿡 뿡 ‘이 우렁찬 방귀소리는 무엇인가!


순간 너무 당황한 나는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며 내 앞에 손님 얼굴, 선생님 얼굴, 선생님 앞에 손님 얼굴과 가게 안에 공기를 살폈다.


막상 방귀를 뀐 선생님의 표정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마치 무슨 일 있었냐는듯한 얼굴로 고객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고객들의 표정은 순간 미묘한 미동은 있었으나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거울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도 괜스레 ’ 흠 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게 커트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 있다가 손님들이 나가시고 선생님이 방금 저지른 방귀 사건에 대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면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온통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긴장한 가운데 고객들을 보냈다.


다행히 선생님은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망한 나도 그냥 모른 척 다른 일을 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점장님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 점장님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방귀소리 들었어?”


“네 손님 두 분 계시는데 엄청 크게 뿌우우 우웅~ 뿡 뿡했어요! 민망해서 혼났어요.. “


이 말을 마치자마자 둘은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깔깔깔 웃었다.

어제부터 참아온 웃음이 사그라질 줄 모르고 손뼉을 마주치며 웃고 싶을 만큼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쏟으며 한참 웃다가 점장님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다가 뭐가 잘못됐는지 수술은 잘 됐는데  방귀 조절이 잘 안 된다고 ( 점장님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하지 않고 대충 흘려듣는 버릇이 있으시다.) 그래서 이날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이유를 전해 주셨다.

뭐 아무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는 사실,

어쩔 수 없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새어 나온다게

점장님이 전해 들은 이야기 라고 하셨다.


그 뒤로도 우리는 그 선생님과 얼마간 함께 일했고

수시로 들려오는 뿡!! 뿡!! 방귀소리에 놀람과 민망함은 우리의 몫이었다.


참을 수 없는 방귀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상황에 60이 넘은 나이에도 굳이 나와서 일하시는 선생님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선생님은 90세가 넘은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고, 젊은 시절 고단한 시집살이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치매까지 앓고 계시며 60살이 넘은 자신을  아직도 타박하는 시어머니와 하루종일 붙어 있기 싫어서 요양사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는 나와서 일을 하시는 거라고….


그래 여자로서 남자들 앞에 사회에 나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뿡뿡 방귀가 나오는데 누가 민망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싶어 선생님의 사연도 안타까웠다.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지만, 대화가 잘 통해서 함께 일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선생님의 인생 철학과경험담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그때 그 방귀 선생님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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