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정 Sep 30. 2024

나의 미용실 이야기

미용사 신념

2013년!

미용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자신감에 불이 붙었을 때 나는 동네에 작은 미용실을 오픈했다.


친하게 지냈던 미용 학원 동기 언니가 미용실을 오픈했다고 하니 왠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용기가 생겼다.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됐던 터라 집에서 쉬고 있던 나는 특별한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남편을 졸랐다.

계획에 없는 일을 유난히 싫어하는 남편은 뜬금없이 미용실을 하겠다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남편이 얼마나 계획적인 사람이냐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3박 4일  모든 일정을 분단위로  쪼개서 A4용지에 짜온 사람이다.


그런 유별난 계획형 남편이래도 내 똥고집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미용 기술하나 달랑 믿고 젊은 혈기에,

동기언니도 하는데 나는 못하겠냐는 시기 섞인 마음으로 몇 군데 대충 훅 둘러보고 막무가내 근성으로  맘에 드는 미용실을 인수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재래시장이 있고 중심상권이 어느 정도 안정된 동네였다.

그중 한집 걸러 한집은 미용실이라고 할 만큼 미용실이 참 많았는데 나도 한집 차지하고 말았다.


예전에 나는 미용을 배울 때 늘 듣던 말이 있다.


“은정이 너는 미용에 소질이 있어. 그런데 열정이 없는 거 같아. 그 와중에  연습도 안 하고… 열정과 연습 그 두 가지만 더 갖추면 정말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


몇 년간 세 군데 미용실을 옮겨가며 원장님들께 들었던 말이다. 열정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있었던가…


그리고 연습이라니….  


그 당시엔 거의 대부분  하루 12시간 근무였고, 주 1회 휴무에 스텝들은 오픈 1시간 전, 퇴근 후 1시간은 오픈준비 뒷정리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 대략 14시간 근무에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내가 가진 에너지로는 연습은커녕 하루하루 출근하기 버거웠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런 내가 언제 또 사그라질지 모르는 순간의 열정으로, 언니를 시샘하는 듯한 모양새로 남편을 졸라서 오픈을 했으니 나도 참 막무가내에 깡도 좋았다.


나의 막무가내에서 나오는 깡은 가격표를 정하는 데에서 또 발휘 됐다.

동네 평균 펌 시세가 삼만 원이었고 내가 인수한 가게는 특히 더 저렴한 콘셉트로 이만 원 받는 가게였다.

그 시절 나는 내 기술에 자만 조금 보태서 자신감 충만했다. 내기술을 싼값에 팔고 싶지 않았고 싸구려 약제들로 순간 돈벌이 하는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 때도 훌륭한 레시피와 손맛, 그리고 좋은 식재료가 필요하듯이 미용도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좋은 약제들과 장비가 없으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기술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 시술해 드리고 그에 맞는 적당한 가격을 받기 원했고, 동네 미용실 평균 단가보다는 조금 더 비싼 기본펌 오만 원 가격을 책정했다.


내가 동네 상권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로는   

첫째, 나만의 기술 특히 모발손상을 최소한으로 한다.

둘째, 좋은 재료를 사용하되  대형샾보다는 저렴한 시술가격을 받는다.

셋째, 집에서도 손질이 편한 디자인을 권하고 시술한다.

넷째, 장삿속으로 고객을 속이지 않는다.

이 네 가지를 중요하게 삼았다.


이만하니 처음엔 무계획 막무가내 같은 미용실 창업도 뭔가 나름 내 철학이 담긴 미용실 이 되었다.

그렇게 여차여차 준비를 마치고 동네에 열심히 홍보를 하며 미용실 오픈을 했다.


처음엔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냐,

원래 주인 어디 갔냐 , 동네에서 비싸게 장사하면 누가 오겠냐 하는 고객들이 찾아왔다.


그분들께 나의 콘셉트를 설명해 드렸고 , 가격흥정을 해서 고객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만이 갖고 있는 운영 방침이 흐지부지 될 거 같았다.


그렇게 기존에 고객들에 대한 권리비를 전 주인에게 지급했으나 저렴한 가격이 좋아 찾아오던 손님들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던 중 한 명씩 한 명씩 새롭게 찾아오는 고객들이 생겼고, 나의 진심을 다해 시술해 드렸다.


우리 미용실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도 시내에 대형샵보다는 가격이 합리적인 점등을 말하며 아낌없이 내가 가진 것들을 서비스해 드렸다.

그렇게 점점 소개소개 해서 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한 번은 우리 미용실을 다녀가고 마음에 드셨던 고객님이 자신의 딸을 데려왔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아가씨였다.


나는 그 고객과 상담을 하며 원하는 디자인을 파악했고 그동안 해왔듯이 , 우리 미용실의 특색과 그에 대한 비용이 동네 미용실과는 다소 비쌀 수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서비스와 시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둘은 합의점을 찾고 우선 샴푸부터 하러 갔을 때다.

고객은 팔짱을 끼고 샴푸대에 누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원장님 각오는 하셨죠?”


“네? 무슨 각오여? “


”아니 저한테 그렇게 비싼 요금을 받으실 거면

당연히 그에 대한 각오는 하셔야죠~

얼마나 잘하시는지 기대할게요. 그렇지만 머리가 잘 안 나오면 그에 따른 대가도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동네에서 비싼 돈 받고 장사하실 거면 그 정도 각오는 당연히 하셔야죠 ~“


순간 어이가 없고 상당히 불쾌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가격을 받아야 하는지 , 그에 따른 내가 해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충분히 상담을 해드렸다고 생각했고 내 강요가 아니라 본인이 내게 머리를 맡기기로 하고선 갑자기 각오라니…. 물론 시술 후 문제가 생긴다면 당연히 내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일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고객이 나에게

‘네가 얼마나 잘하길래 동네 미용실 주제에 그렇게 비싼 돈을 받아? 어디 한 번 해봐라 ’

하고 말하는 거처럼 들렸다.


나는 정중히 다시 한번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 고객도 똑같이 다시 한번 내게 각오하고 머리를 만지라는 거다.

나는 그 고객을 일으켜 세우며 이야기했다.


“저는 고객님 머리 해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


”지금 손님을 거부하시는 거예요?? “


”네 저는 당연히 책임감을 갖고 그에 대한 비용을 받고 시술해 드리는 건데 단단히 각오까지 하면서 고객님 머리를 만지긴 어려울 거 같네요.. “


엄마랑 같이 온 그 고객은 펄쩍펄쩍 뛰면서 내 탓을 하며 원장이 머리를 못해준다고 했다.   불친절하다. 싹수가 없다. 엄마도 다신 오지 마라.라고하며  씩씩대고 돌아갔다.


나는 당연히 내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자신 없는 부분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눈앞에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나 변수는 있기 때문에 내가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지만 고객에게 끌려가며 절절 메이는 장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내가 주인이어서 그 고객을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직원의 위치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사연은 이러하다.


단골로 오는 고객 중에 아이 둘 엄마가 있었다.

큰아들이 6살인데 유난히 움직임이 심하고 들어오면서 눈물콧물 쏟는 아이다.

얼마나 움직임이 심하냐면 앉아서 머리를 깎아본 적이 없을 정도고 어른 두 명이 붙잡아도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발버둥 치는데 그 순간 혼이 나갔다 들어갔다 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날도 그 아이가 아빠랑 단둘이 왔다.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이 머리를 깎아줬고 온몸으로 바둥거리는 틈에 선생님 손도 가위에 베이고 아이 귀에도 살짝 상처가 났다. 바늘로 콕 찍힌 정도로 작은 상처라 대게 하루면 아문다. 머리는 당연히 깎다 말았다.

어느 정도 진정을 시킨 뒤 내가 다시 한번 아이를 달래 보았다.

 “ 아들아 머리가 지금 너무 안 이쁜데 이모가 하나도 안 아프게 쪼금만 다듬어 볼게~”

사탕으로 꼬셔봐도 아이는 기겁을 하고 아빠에게 안겨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와 아들이 돌아갔다.

한참뒤 가게로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은

다짜고짜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따지듯이 말했다.


”방금 전에 우리 아들 누가 머리 깎아 주셨어요?

아니 머리를 이렇게 깎다 말고 보내면 어떡해요?

머리도 엉망인데 귀에 상처는 어떡하실 거예요?”

화가 단단히 난 목소리로 엄마는 이야기했다.


나는 우선 죄송하게 됐다, 엄마도 알다시피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냐, 아빠도 같이 계셔서 그 상황을 다 아실 텐데 이야기 못 들으셨냐,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만할 수밖에 없었다고 차분히 설명을 했다. 그랬는데 그 엄마는 더 화를 내면서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냐! 이렇게 할 거면 집에서 하지 돈 내고 미용실 왜 가냐 전문가가 왜 필요하냐며 막 성질을 냈다. 그 아이 때문에 우리 선생님도 손까지 다쳤는데 막무가내로  화부터 내는 상황이 하도 기가 차서 나도 맞받아 쳤다.


댁의 아들이 유난히 그러는데 그럴 거면 어린이 전문미용실로  가시던지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는 애를 왜 맨날 데려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냐 우리 선생님 다친 건 알고 계시냐 그건 어떻게 하실 거냐 나도 화를 못 참고 성질을 내버렸다.


그 엄마는 당장에 가게로 찾아왔고

내게 아까처럼 똑같이 말해보라고 고객들 앞에서 나를 다그쳤다. 성질 같아서는 정말 싸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가게 안에 고객들도 있었고 점장님은 나를 믿고 가게를 맡기셨는데 안 계실 때 내가 막 고객이랑 싸우고 있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아이 머리 깎아준 선생님은 죄송하다 연신 사과를 했고 나도  내가 그러면 안 되겠지  참아야지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내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저도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어머니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네요. 저의 말에 마음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아이를 비난하려고 한건 아닌데 저도 화가 나서 말을 잘못했네요… 그 말에 대해선 저도 사과드립니다. “


나는 사과를 했고 그 고객은 돌아갔다. 나는 다시 가위를 집어 들고 기다리던 고객을 의자에 앉혔다. 머리를 깎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저런 계념 없는 엄마한테 사과를 해야 할까, 분했나 보다. 앞에 앉은 고객이 불편해하실까 봐 최대한 참아보려 하는데 도대체 분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마저 가위질을 하며 생각했다.


’ 잘했어 은정아 네가 잘한 거야 기특해 ‘  


상황 상황마다 대처해야 하는 방법들이 있다.

나는 내가 사과했다고 해서 그 고객에게 끌려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분에 못 이겨 눈물이 흐르긴 했지만 내게 주어진 책임을 멋지게 감당했다.

10여 년 전에도 지금의 나도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내가 가진 신념을 가지고, 고객에게 진솔하게 대한다. 가끔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나를 찾아오는 고마운 고객들도 있기에 오늘도 나는 가위를 잡는다.

이전 07화 기억에 남는 동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