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다.

셋이 함께 하는 시작

by 은나무


아침은 항상 생각보다 시끄럽게 찾아왔다.

현수는 새벽부터 소파를 뛰어다니고 작은 목소리로 익숙한 단어들을 반복했다.

“아빠! 아침이야! 밥 줘!!”

진우는 더듬거리며 일어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수연은 커피를 내리며 조용히 그 풍경을 지켜봤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족의 아침이었다.

그러나 수연의 가슴속에는 들꽃처럼 가라앉은 불안이 언제든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현수가 수연에게 다가와 팔을 뻗었다.

“이모, 같이 놀아요.”

수연은 놀란 듯 미소를 지었다가 바로 움츠러들었다.

‘이모’라는 말은 친근했지만 동시에 현실을 환기시켰다.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불리는 자리.

‘어른’이지만 ‘엄마’는 아닌 그 경계.


수연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현수의 작은 등을 두드렸다.

손의 온기가 전해지자 아이의 숨이 잠시 편안해졌다.

그 작은 신뢰가 낯선 집 안에서 수연을 조금씩 적응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깊어질수록 균열은 소리 없이 드러났다.

전처와의 문제가 생각보다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한 주는 전처가 현수의 옷을 챙기러 온 날이었다.

문 앞에서 수연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전처는 인사를 건네고는 빠르게 필요한 물건을 집어갔다. 말은 짧았고 공기는 더 짧았다.


“다음에는 미리 말할게요.” 머쓱했던 진우가 무심한 듯 말했지만 수연의 귀에는 무너지던 기억들이 겹겹이 울렸다. 집 안의 작은 소품 하나 액자 뒤의 오래된 사진 한 장. 전처와의 흔적들은 수연에게 ‘임시’라는 꼬리표를 계속 떠올리게 했다.


밤에는 더 난감한 일이 생겼다.

현수가 이유 없이 떼를 쓰고 소리를 질렀다.

진우는 즉각적으로 달래려 했고 수연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진우 씨 그렇게 하지 마. 현수에게 뭐가 불편한지 물어보고 무조건 달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수연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단호했다.

진우는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너무 엄격해. 그냥… 조금만 참아줘.”


그 말에 수연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진우가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건 단지 규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연의 말투나 기준이 ‘비정상적’으로 판정되는 순간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평가하게 됐다.

‘내가 새엄마로서 맞는가’

‘내가 현수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하루는 사소하지만 큰 사건이 있었다.

현수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수연이 차려준 밥을 장난치다 엎어 지자 곧 울음을 터뜨렸다.

수연은 피곤한 몸으로 한참을 달래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날 저녁 진우가 조용히 말했다.

현수를 위해서 노력해 줘서 고마워 현수도 당신을 좋아해.”

짧은 말이었지만 수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군가가 작은 노력을 알아줄 때 그녀의 긴장감은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시로 비교와 상처는 자꾸만 튀어나왔다.

친구들이 ‘계모’라는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던지는 농담. “아이 있는 남자랑 사는 건 힘들지?”라는 무심한 질문들. 수연은 과거에 배운 ‘침묵의 기술’을 자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침묵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쌓이는 감정은 폭발 직전의 탄약처럼 늘어나기만 했다.


어느 늦은 밤 수연과 진우는 결혼 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물컵 둘 낮은 조명 창밖은 조용했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어.”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가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데 내 역할이 흔들릴 때가 많아.”

수연은 숨을 고르고 자신이 느꼈던 불안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내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단호했다면 미안해.

나도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그랬어. 진우 씨가 내 진심과 노력을 조금만 알아주면 좋겠어.”

그 대화는 서로의 오해를 하나씩 풀어가는 시작이었다. 진우는 수연의 과거를 조심스럽게 품겠다고 약속했고 수연은 진우가 현수의 아버지로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둘은 규칙 하나를 만들었다

‘가족의 일은 항상 함께 상의한다’.

현수의 육아일정 전처와의 연락 시간 집안일 분담표까지. 소박했지만 실천 가능한 약속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효과를 냈다.

어느 날은 진우가 수연의 퇴근시간에 맞춰 마중을 오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수연이 현수와 함께 그림을 그려 식탁에 붙여두기도 했다. 작은 성취들이 가정의 결을 조금씩 빚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현수가 전처와 있을 때와 집에 있을 때 태도가 달라질 때. 수연은 자신이 끊임없이 비교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때때로 수연을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진우는

그 태도를 오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둘은 곧 다시 앉아 이야기했다.

둘의 대화 방식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대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점이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셋이 식탁에 모여 간단한 김치찌개를 먹었다.

현수는 젓가락을 다루며 자랑스럽게 웃었고 진우는 그런 현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수연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떠올렸다.

지금의 이 순간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비록 재혼가정의 어려움은 계속될 테고 커가는 갈등은 또 다른 시험을 가져오겠지만 그날 저녁 수연은 작은 확신을 얻었다.


우리는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이 가정을 꼭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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