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수줍음이 많았다.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늘 소심하게 뒤에 서 있곤 했다.
그러던 내가 6학년이 되면서, 내 삶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내 짝이 된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부유했으며, 무엇보다 성격이 활발했다.
전교 회장 선거에 나설 만큼 당당한 모습은 내 눈에 참 부러웠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마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대신 채움 받는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내게 동경이었고, 작은 희망이기도 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나를 볼 때마다 말씀하셨다.
“은정이는 참 예의가 바르다.”
그 칭찬은 어린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그저 수줍고 위축된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예의 바르고 믿음직한 아이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깨우는 듯했다.
그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나는 놀랍게도 당당해졌다.
어디든 함께 나서고, 손을 들고, 스스로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변화를 느꼈다.
그러나 그 변화는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작은 시골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옆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한 우리는 더 큰 무리 속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눈에 띄는 아이’가 되었고, 당당함은 때때로 말썽으로 이어졌다.
선생님 앞에서도 숨지 않고, 선배들에게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태도는 내가 원래 가진 성격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하면서 배운 용기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이었다.
내 안에서 자라난 당당함은 나를 키워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문제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제가 변하게 된 건, 부모의 말보다 친구의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활발한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동시에 잘못된 방향으로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친구와의 관계는 때로는 아이를 성장시키고, 때로는 방황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가 아이의 친구를 무조건 끊어내려 하기보다,
“그 친구랑 있으면 네가 어떤 기분이 드니?” 하고 가볍게 물어봐 주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가 아이를 키우듯, 때로는 힘든 관계도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의 경험이 엄마들에게 작은 힌트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