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복한 여자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날 처음 보면 흔히 이렇게 말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란 것 같다고.
예쁨만 받고, 어리광이나 부리며 살았을 것 같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내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며,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눈물도 겁도 말라버린 내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마냥 어린애 같아 보인다니.
한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화부터 났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얼마나 살아내기 버거웠는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소리쳐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늘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어린애처럼 보았다.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왔어도
내 얼굴 빛에는 여전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30대 중반, 둘째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 등·하원길에서 만난 또래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는 밝고 따뜻했고, 내게 자꾸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원래 혼자가 익숙했다.
누군가와 새로이 관계를 맺는 게 늘 두렵고,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다.
아이들끼리 놀고 싶어 해도
나는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내게 외로움만 주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 아이에게 만큼은 외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가오는 그 엄마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때부터 내 주변엔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향기를 가진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들과 어울리며,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들의 평안함을 닮고 싶었고,
나 역시 그런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안의 뾰족한 가시들을 하나씩
직면하며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울고 또 울며,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고, 회복은 서서히 찾아왔다.
그때 그 친구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내 안을 오래 울렸다.
“언니는 상처가 많지만, 그것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멋져요.
언니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이 될 거예요. 언니야말로 상처 입은 치유자예요.”
나도 아직 완전히 치유가 된 건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내 아픔을 이야기하다가 내 연민에 빠져
눈물부터 쏟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자라주었고,
나는 긴 전업주부 생활을 청산했다.
이제는 새로운 자리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이, 나처럼 아픈 누군가에게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쉼이 되고,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란다.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