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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강사도 다크서클 짙은 학생이었다.

[루하 작가]

by 은나무



새벽 5시 30분.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대학 특강을 하러 가는 날이다.

요즘 애들 만나면 기운이 나겠지, 싶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생각했다.



“아, 오늘도 쉽지 않겠다.”



반짝이는 청춘이라 생각했던 20대들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을 달고 있었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오늘도 버텨야죠…”라며 웃었다.

누군가는 “이번 학기 학사경고예요.”라고

거의 자랑처럼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그래, 나도 그랬지.’



나도 20대엔 늘 피곤했고, 늘 불안했고, 늘 의욕이 없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던 야간대학생.

꿈이 뭐냐고 물으면 “살아남기요.”라고 답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20년째 상담사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특강을 다닌다.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괜히 어깨가 들썩이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 교수 아니고, 잠 줄여서 뛰어온 프리랜서야.”



오늘도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은 성장의 시기가 아니라, 시작의 시기예요.”



말하면서도 속으로 웃겼다.

‘아니, 나도 아직 시작 중인데 무슨.’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무기력할 때는 어떻게 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무기력하게 지내요.

억지로 뭐 하려다 더 피곤해진 적이 많아서요.”


학생이 피식 웃었다.


“현실적이다. 근데 위로가 돼요.”



그 말이 묘하게 좋았다.

예전엔 상담사로서 ‘좋은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냥 ‘같이 사람 냄새나는 말’을 하고 싶다.



특강이 끝나고 교정을 걸었다.

캠퍼스 안엔 가을바람이 살짝 스쳤고,

멀리서 웃는 학생들 소리가 들렸다.



문득 생각했다.

20년을 상담했는데, 여전히 사람 마음은 모르겠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모르는 걸 인정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멋진 말을 했지만,

사실 그 말은 나에게도 한 말이었다.



“괜찮아요. 지금은 시작의 시기예요.”



나도 여전히 시작 중이다.

그리고 그게 나쁘지 않다.



[작가소개]


상담사이자 프리랜서 강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매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배워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담사 루하작가님의 이야기 많이 많이 읽어 주세요^^♡♡

https://brunch.co.kr/@ruha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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