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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꽃 May 14. 2024

시골이 키운 아이

밤하늘을 날아서

  어느 여름날 놀이공원에 갔었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놀이기구를 타느라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고 난 남편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정원,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사람, 울며 보채는 아이, 더운 날씨에도 손잡고 붙어 다니는 연인 등 다채로운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연인을 보며 “아이고, 좋을 때다. 덥지도 않나?”하며 시선을 돌리다 ‘반딧불이 축제’ 배너를 발견했다. ‘반딧불이?’ 고개를 쭉 빼고 위치를 확인 한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봐야겠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 반딧불이 보러 가자.” 

“반딧불이가 있어?” 

“어. 저~기! 가자, 빨리” 

남편등을 밀어 반딧불이를 찾아갔다. 가까워질수록 상기되는 내 얼굴은 더위 때문이 아니라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서였다. 반딧불이가 밟힐 수 있으니 발밑을 조심하라는 안내를 받는 동안 발을 동동 굴렀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났던 거다. 그런 기분 오랜만이었다. 깜깜한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난 “하아~” 숨을 토해내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콧등이 시큰하며 눈이 뻐근해 왔다. 뜨거운 것이 뱃속 어딘가부터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깜깜하니 눈물 찔끔 흘려도 괜찮았다. 30여 년 전에 헤어져 못 보고 지낸 옛 친구, 반딧불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꼬맹이였을 때 헤어졌던 친구를 난 나이 들고 넌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난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잘 있었어? 나 네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어.’ 턱을 괴고 눈으로 속엣말을 건넸다. 평소에는 오글거린다고 하지 않던 말들을 하게 되더라는 거다. 나무에 걸터앉은 반딧불이, 바닥 여기저기 앉은 반딧불이에게 골고루 눈인사를 하며 슬쩍슬쩍 눈물을 닦아냈다. 만남의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안내원이 커튼을 걷으며 그만 나가라는 신호를 했을 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잘 있어. 진짜 반가웠어.’ 소리 없는 인사를 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 한편에 쪼그마한 슬픔, 아쉬움, 반가움등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묵직했다. 밤이 깊어 식구들은 다 잠들었는데, 낮에 만난 반딧불이에 대한 여운이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잠이 오질 않아 어두운 천정과 얼굴을 맞대다 눈을 감고 어릴 때의 그날을 추억했다.
 
 아이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땅따먹기, 오재미를 하며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달려오더니,
 "오늘밤에 창오 오빠가 반딧불이 잡으러 간대" 
 "나두 갈래“
 “나두!” 

“나두 같이 가”

 집으로 돌아와 뒤란에 굴러다니던 작은 소주병이 생각나 가보니 다행히 있었다. 봉당 수돗가에서 정성 들여 씻고 ‘이제 준비는 됐어’. 저녁밥을 헐레벌떡 먹고 어두워지기만을 꼬박꼬박 기다렸다. 가로등이라는 건 알지도 못할 때였다. 세상이 온통 캄캄해지니 풀벌레소리가 어서 나가라며 등을 떠밀어 씻어 두었던 소주병을 들고나가니, 아이들도 시커먼 굴 같은 집에서 빈 소주병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 소주병을 들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웃겨 키득거리다 어떤 아이가 

“캬아~” 술 마시는 흉내를 내니 너도나도 덩달아 소주병에 담긴 공기 한 모금씩 마시고 

“캬아~ 큭큭큭”

“어~ 취한다!”

"으~하하하하"

창오오빠가 사 홉 드리 소주병 들고 말도 없이 앞서가는데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우린 잔뜩 설레어 마을 앞 논까지 쫄래쫄래 따라갔다. 별이 빼곡히 박혀 빈틈이 보이질 않는 하늘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반딧불이의 빛이 춤추듯 날고 있었다.
 “어!! 반딧불이다!!”
 “와!”
 “별이 날아다니는 것 같지 않냐?” 아이들이 신이 나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질퍽질퍽한 논 사이 둔덕을 한 줄로 뒤뚱뒤뚱 걷는데 앞에 걷던 오빠의 발이 쭈욱~ 미끄러져 논에 빠졌다.
 "창오 오빠가 논에 빠졌어. 웃기다, 그치?"
 뒤에 있던 아이가 고개를 옆으로 빼꼼히 내밀며
 “진짜?”
 “하! 하! 하!”

‘애들이 저렇게 웃으니 빠지면 창피하겠어.’ 

발가락 열 개에 온 힘을 주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 무진장 애쓰며 걷다 보니 드디어 반딧불이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야! 이제 다 조용히 해"
 숨을 죽이고 내려앉은 반딧불이를 한 마리씩 잡아 병에 넣었다. 

“웩!! 이상한 냄새!” 불그을음 같기도 하고 터진 벌레 냄새 같기도 했다. 
반딧불이가 죽을까 봐 조심하며 병을 채웠다.
 “빨리 집에 가자, 이제.”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왔다. 
 “씻어!” 엄마의 목소리에 손, 발에 묻은 흙만 대충 씻고 들어와 방의 전등을 끄고 반딧불이와 마주했다.
 "야~ 이쁘다. 신기해.."
 턱을 괴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느리게 깜빡이는 불빛이 교회성탄절 장식에서 봤던 거랑 비슷했다.
 "아! 책을 봐야겠다."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책을 가져와 펼쳤다.
 "에이~ 뭐야 안 보이잖아. 반딧불이로 책을 봤다며?! 더 많아야 보이나?" 
 밤이 더 깊어질 때까지 보다가 너무 졸려 마당으로 나가 병을 쏟았다. 어느 게 별이고 어느 게 반딧불이인지 모르겠을 때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진흙에 미끄러져 빠지던 오빠가 떠올라 이불 뒤집어쓰고 쿡쿡 웃다 어느 틈엔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좋은 기분이 구름처럼 둥둥 떠 다녔다. 밤사이 다녀 간 옛 친구에 대한 추억 덕에 온몸에 힘이 생기고 마음이 튼튼해졌나 보다. 벌떡 일어나 커다란 창문을 전부 활짝 열고, 이럴 때 음악이 있다면 더 좋겠다 싶어 음악을 크게 틀고 이불이랑 베개를 힘 있게 탁! 탁! 털어 말끔하게 정돈했다. 아파트 창밖으로 개미같이 작은 사람들이 강둑을 걷고, 아침에 태어난 꼬맹이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자동차들이 ‘나 잡아 봐라’하듯 줄을 지어 달리고 있었다. 기분 좋게 깊은 한 숨을 내 쉬니 웃음이 나왔다. 자연에서 퍼담은 추억은 엄마를 대신해 늙지 않고 나를 끝까지 돌보는 보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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