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크 Nov 06. 2021

사람의 바다, 서울

매일매일이 전쟁

한동안 피곤한 일정으로 집에만 있다가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기분 전환으로 또 카페에 가보자, 하고 나섰다. 쿼츠라떼 이후 안 갔던 용산에 당케커피를 가보려는 길이었다. 위드코로나를 앞둔 토요일. 사실 하반기부터는 이미 풀린 거나 다름은 없었다. 홍대, 시내, 용산, 이태원 등 여러 갈래로 퍼진 상업지구들이 이젠 고르게 뭐가 많고 사람도 많다. 그래도 이런 곳들은 강남역이나 명동 같은 대형 상업지구가 아닌 골목상권에 가까운 곳이다보니 자꾸 어느 정도의 한가로움을 기대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매일 매일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이다보니 이런 곳에서라도 한가로움을 느끼고 싶은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대로변에 위치한 쿼츠라떼를 보니 내부는 꽉 차있고 야외석까지 바글거리고 있었다. 불안한 느낌을 안고 내려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창 더운 여름에 갔던 꺼거는 사람이 없어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거기부터 바깥에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난리였다. 알고보니 당케커피는 바로 옆집이었다. 사정이 다를 리 없었다.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야외석까지 꽉 차서 발 디딜 틈 없었다. 작은 공간의 카페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뭔가 정신이 없었다.

맨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런 컨셉은 아니었을 텐데. 강북에 최근 자리를 잡은 수많은 작은 카페들은 마을의 아기자기한 골목 느낌을 염두에 두고 개장을 했었을 텐데 이미 서울에선 어디도 그렇게 즐기긴 힘들어진 것 같았다. 일단 좀 예쁘거나 맛있거나 해서 sns를 탄 곳이라면.

카페에 가기 전에는 포스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거기 도착하자 모든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 한 장도 찍기가 어려웠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사진 찍어서 각자 올릴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린 4시 넘어 좀 느지막히 갔었는데 그나마 6시 가까이 되자 사람들이 빠지고 그제서야 숨을 쉴 만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의 출퇴근 길도 그렇고 일상에서의 커피 한잔, 혹은 식당 예약 등이 해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마음에 드는 옷 한 벌을 사려고 해도 그렇고 뭘 하든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점점 치열한 경쟁 모드로 바뀌고 있다. 지하철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10년 전이다. 그때 나는 2호선을 30분 정도 타야 하는 출퇴근 구간이었다. 인구 밀도가 늘어나는 것이 몇 년에 걸쳐 조금씩 파노라마처럼 체감이 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2021년, 서울은 그저 콘크리트 정글이어서가 아니고 일상이 참으로 팍팍해진 그런 도시가 되었다.

얼마 전 휴가로 갔었던 제주 남원읍이 새삼 그리웠다. 별건 아닌데 그냥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고 숨쉬며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그 주거환경이 참 좋았다. 어디든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다니고 가는 곳마다 무성한 귤밭과 바다가 함께 하고. 자그마한 학교를 지나면 그 옆엔 정감 가는 식당, 그리고 그 옆집은 작은 책방. 걸어도 걸어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거리들. 이제 제주로 향하는 것은 특이한 관광지를 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을 찾으려는 목적이 더 크다. 

점점 소비의 극단으로 치닫는 서울에서 진짜배기 컨텐츠나 행복, 편안함은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 같다. 나 또한 가느다란 실 끝으로 옮겨 다니듯이 작은 소비에서 소비로 전전하면서 내 인생의 기둥을 세우지 못해 흔들리고 있다. 예전에는 나의 30대와 40대를 아주 평범하고 아름다운 것으로만 상상했었는데 이제 다가올 앞으로의 10년은 이전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런 시대가 될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명상살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