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풍경을 읽어드립니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떠오르는 장면

by 조은정

“잘 주무셨죠?” “안 잤어”
“거짓말. 아까 자는 거 다 봤어요”
“그건 그렇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지? 난 이해가 안 가”
“그러게요. 누가 재밌다고 한 건지.

영화 보느라 수고했어요”
영화가 끝난 후 내 뒷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격려의 인사를 나누었다.
파도가 쓸어간 듯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영화관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출구로 들어온 직원은 불을 켰다가 나를 발견하고선
다시 불을 끄고 내가 나가기를 주시했다.
괜한 오기가 생겼다.
나만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직원에게 살짝 미안했지만, 난 뒷사람들과는 달리
이 영화를 진심으로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남아있어도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내내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느라,
대사를 하나하나 받아 적느라,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놓칠까,
잠이 오기는커녕 조마조마했던 편에 가까웠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아주 어릴 적 바닷가에 앉아

모래를 움켜쥐던 기억이 났다.
햇볕에 빛나는 모래알들이 너무 예뻤지만
아무리 잡아도 손가락 사이로 사라졌다.
바로 몇 초전까지 내 손안에 있었는데
펴보면 모래알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몇 번 반복 끝에
결국 모래가루만 잔뜩 묻은 두 손을 털며 일어났다.
그 와중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이는
열심히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어차피 파도에 휩쓸려 갈 건데

왜 저렇게 열심히 쌓는지 몰라.’
그 애에게 당장 가서
큰소리로 핀잔을 주고 싶었다.

어차피 없어질 모래성이었고,
어차피 잡을 수 없는 모래였으며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었다.

나는 비치볼을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혼자 걸어나왔다.
비치볼은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그때 그 기억은 사라졌다.


고 믿었다.
그런데 다시 떠올랐다.
비치볼을 바닷물 속에 감출 수 없듯이.
오늘 본 영화는
그날 내가 잃어버렸던 비치볼 같았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계속 떠다니는 무엇.
그래서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무엇.


어느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성을 쌓고 있던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도 같이 하자고.
그애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자기 옆에 놓인 무언가를
내게 주었다.

그날 그 비치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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