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예찬
지나고 보니 그렇다. 시험관, 이 세계의 진정한 능력은 누가 성숙 난자가 많이 나오냐, 이런 ‘몸‘의 영역이 아니었다. 누가 얼마나 오래 버티나, 실패한 차수에서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도전하나, 이런 ‘마음’의 영역이었다.
시험관을 하다 보면 인생이 시험관으로 뒤덮인다. 그건 우울로 직진하는 길이라, 마음을 환기시켜 줄 장치가 꼭 필요하다. 몰입할 거리를 찾아야 시험관 기간을 버틸 수 있다.
난임 생활 전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경제/경영서를 일 년에 한, 두 권 사는 정도였다. 그렇게 산 책을 다 읽지도 못했다. 그랬던 내가 난임기간을 통과하며 일주일에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이 되었다. 읽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이제는 읽지 않고는 살기가 어려워졌다.
난임 라이프를 시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책과 친해지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 웃으면서 수다 떨 자신이 없었고, 가식적인 대화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니 일부러 사람들을 피했다. 외로운 나에게 책은 속 깊고 재미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읽기 시작하고 당장 책의 도움을 받았다. 난임병원 대기실에서. 아무리 적게 기다려도 한 시간이다. 대기 시간도 문제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시간에 쌓이는 불안. 대기실에서 대책 없이 앉아 있으면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책이 있으니까. 덕분에 병원에 다녀오는 타격이 대폭 줄었다. 몸은 대기실에 있지만, 마음은 책을 타고 알래스카 순록의 이동을 보기도 하고(호시노 미치오, <긴 여행의 도중>), 교토를 걷기도 했다(한수희,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김영하 작가가 소설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양식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그만큼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소설을 읽었다. 정유정, 정세랑 작가님의 책에 마음을 빼앗겨 두 분이 쓴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추천한 책으로 확장했다. 읽는 세계는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는 곳이었다. 이렇게 광활한 곳을 알게 된 것이 반가웠다. 얼마나 신선한 생각과 신기한 단어나 표현을 만날까, 기대할 것 없는 생활이었는데 설렘이 생겼다.
태어나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 적이 처음이었다.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어 자연스럽게 병원이 등장하거나 의료인이 쓴 책들을 읽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남궁인 작가님의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으며 밑줄을 잔뜩 그었다. 매일, 매초 생명과 전쟁하는 지독한 일상과 그의 섬세한 표현이 나란히 글자로 적힌 것을 보며 그와 함께 안도했다가 울었다.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선생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흉부외과 의사인 정의석 선생님의 <병원의 밥: 미음의 마음>을 연달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생명을 기다리는 내가 죽음을 자주 떠올리는 것이 어색했지만, 죽음이 생명과 함께 탄생하니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그러나 싹은 어디에서든 피어난다. 그리고 척박한 곳에서 움튼 싹은, 오히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한다. 우리는 주저앉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병원을 나간 사람들은 시련을 극복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_ 남궁인, <제법 안온한 날들>
난임 기간이 딱 코로나 기간이어서 타인과 대화할 기회가 더 없었다. 내 이야기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런 마음으로 에세이를 연달아 읽었다. 특히, 한수희 작가님의 문장 덕에 시험관 4, 5, 6차를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을 여러 번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다 울었으면 일어나서 네 할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에세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좋은 에세이는 내 마음을 비춰주었다. 내가 왜 슬픈지, 기쁜지, 힘든지 나도 몰랐다가 알게 되었다.
박연준 시인님의 에세이에도 빚을 많이 졌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소란>, <고요한 포옹>, <모월모일>, <쓰는 기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하루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된다는 것에 놀랐다. 상황에 딱 맞는 정확한 표현과 섬세한 시선에 입을 벌리고 밑줄을 연신 그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면서,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주말엔 숲으로>를 읽으면서는 평범하지만 무사한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사소한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둘 다 중요하다는 것. 큰 해류만 잘 살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순간의 기쁨, 일상의 빛나는 순간도 챙겨야 한다는 것. 이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난임생활동안 긴장이 될 때마다 에세이를 읽었다. 얼어붙은 마음이 봄비를 맞은 것처럼 부드러워졌다.
사적인 서점에서 처방받는 책,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을 읽고는 나 스스로를 ‘환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건강한데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는 일상에 스스로를 납작하게 만들고 있었다.
난임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펴 본 책은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앨리스 D. 도마)다. 난임 분야 마음 전문가의 책이라 더 신뢰할 수 있었다. 난임 동료/지지그룹의 중요성부터 다양한 마음 이완훈련, 남편과 잘 지내는 마음까지 자주 열어 보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어떤 위기에 빠져있는지, 이렇게 마음이 힘든 것이 당연하구나. 이런 위안을 준 고마운 책이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 도책장에서 자꾸 꺼내 읽었다. 추천사에 적힌 것처럼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그냥 지나가 버릴 수 있는 순간과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축하할 것들을 챙기며 살아야 할지 적은 편지 같다.
난임 기간 책을 읽기 시작하며, 무엇보다 내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슬픈 일도, 가슴 벅차게 행복한 일도. 혼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광활한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로만 내 삶이 만들어지지 않게 해주어서, 내 인생에 내가 빠져 죽지 않게 해주어서 정말 큰 빚을 졌다. 내가 읽은 책들에, 그리고 앞으로 읽을 책들에.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를 1차 시작하기 전부터 읽자.
2. 시험관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마음으로 하는 거였어. 몸을 위해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처럼 마음을 위해 문장을 챙겨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