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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6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찾는 중이라니까요

by 카후나

06월 16일 월요일 기록


파키들이 제 발로 우리 밑으로 걸어들어왔다. 그 덕분에 우리도 농담삼아 라며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_ 박지리, <맨홀> 59쪽


시엄마는 본인도 난민 출신이면서, 시리아, 터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밑으로 보는데, <맨홀>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본인이 바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 내가 아는 세계에서 내가 가장 밑에 있다는 건 받아들이기 너무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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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7일 화요일 기록


어떤 날의 이야기를 하늘이 어쨌느니, 바람이 어쨌느니 하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이 나에겐 조금 야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말로 위장하는 날은 대개 자기 인생에서 꽤 중요한 날이어서 사실 날씨 같은 것이야 어떻든 조금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_ 박지리, <맨홀>, 261쪽


시나 산문 속 표현도 근사하지만, 내가 느끼는 혹은 지나치는 미묘한 감정을 정교하게 말해주는 말은 소설 속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되는데, 오랜만에 읽은 소설인 <맨홀>은 그런 문장이 유독 자주 나오는 바람에 아끼는 연필이 몽당연필이 돼버렸는데,


그중에 한 문장은 이 문장으로,


처음 읽을 때는 과연 그런가? 중요한 날에는 하늘이나 바람 날씨가 더 신경쓰이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그 '어떤 날'을 떠올려 보고, 처음 판단을 고쳤는데, 떠올린 날은 하나(딸)을 낳던 재작년 8월 16일이었고, 그날의 이야기를 하늘이 어쨌느니, 바람이 어쨌느니 하는 말로 시작한다면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고 있거나, 뭔가 숨기기 위한 교활한 위장처럼 느껴진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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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8일 수요일 기록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_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281쪽


요즘 나의 은밀한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밤 1시부터 7시까지인데, 모두 자고 있는 한 밤에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뭔가 쓰고, 아니면 갑자기 계란 프라이도 해먹는데 그게 그렇게 활력을 주던데 역시 남이 모르는 시간이 주는 힘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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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9일 목요일 기록


엄마가 죽고 난 뒤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 오고야 말았다.

만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이역만리에서 엄마를 가장 가깝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_ 강원, <나를 낳은 사람>, 4+6쪽


이번 도서전에서 마틸님이 사준 강원님 굿즈를 읽고, 나도 엄마가 죽고 난 뒤 처음으로 맞는 생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손 편지를 써달라고 하면 엄마는 정말 써줄까? 안 써줄 것 같지만, 물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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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20일 금요일 기록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총합니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냥 사는 사람도 없다. 모순 없는 두 문장을 잇는다.

_ 은유, <아무튼, 인터뷰>, 표지/뒤표지


은유샘 앞에만 가면 모든 말과 행동이 고장나버리는데, 왜 그럴까 정말 궁금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가면 원래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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