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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9월의 밑줄(1/3)

권여선과 은유를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는데 왜그러냐면,

by 카후나

09월 01일 월요일 기록


자신이 겪는 불행이 무의미한 우연의 소산이라는 사실은 견딜 수 없으므로 어떤 식으로 건 납득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려고 하며 그 불행을 둘러싼 어떤 작은 우연도 혹시 필연은 아닐지 의심한다. 책임질 주체를 찾으려 하고, 끝내 찾을 수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이라도 피고석에 세운다.

_ 신형철,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중에서, 245쪽


줄곧 피고석에 앉아있던 내가 이 문장을 읽고 벌떡 일어났다. 다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고?


신형철님은 불행과 관련해서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있다고 했다. 불행 종합세트 같은 이 책을 덮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불행을 떠올리고, 어떤 일이 신의 영역이었고, 인간의 영역이었는지 생각해 보고 있다.


근데 불행말고 행도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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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02일 화요일 기록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_ 권여선, <실내화 한 결레>,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176쪽


일상에서 나한테만 보이는 나의/내 가족의/내가 속한 사회의 행과 불행.

집 떠나 여행지에서만 볼 수 있는 행, 불행.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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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03일 수요일 기록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일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이나 관계 맺기의 무능함으로 인해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128쪽


내 공감 능력은 얼마나 유능한가?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

요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나타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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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04일 목요일 기록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 심판하는 게 아니라 (..)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128쪽


44세가 되서야 듣기 능력 향상에 관심을 가지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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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05일 금요일 기록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불행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듯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 나는 삶의 '행복 불가능성'을, 즉 그냥 살아감 자체를 받아들였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141쪽


줄곧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아니면 '향상'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다 요즘은 슬슬 저도 '행복 불가능성'을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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