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10월 09일 월요일
척. 그러는 척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서슴없이 척척 잘할 수 있게 된다.
_ 김소연, <한 글자 사전>, 330p
무슨 척하시나요?
요즘 저는 당황하지 않은 척을 많이 합니다. 50일 된 아기와 사는 풋내기 엄마라서 당황하는 일이 많아요. 그런 모습을 아기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침착한 척을 합니다. 이 문장처럼 척하다 보면 척척 일관적이고 침착한 엄마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0월 10일 화요일
육체 어디에 불이 들어와 있나요. 당신의 배인가요, 심장인가요, 이마인가요, 손가락인가요.
_ 김소연, <시옷의 세계>, 117p
몇 년간 난임생활로 미간에 불이 들어와 있다가, 올해는 아기와 한 몸을 쓰느라 배에 불이 들어왔었죠. 이제는 제 양쪽 가슴에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출산 후 딱 3일째가 되는 아침. 이때를 위해 42년을 기다렸다고 포효하며 몸을 작게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했던 제 가슴이 기지개를 켜고 앞으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깨어난 존재는 제 육체의 역사상 가장 쓸모 있는 기관이 되어 한 생명을 먹여 살리고 있네요.
10월 11일 수요일
심심함.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는 꿈이 아니라 심심함의 세계이다. 심심함을 견디기 위한 기술이 많아질수록 잃어가는 것이 많아진다. 심심함은 물리치거나 견디는 게 아니다. 환대하거나 누려야 하는 것이다.
_ 김소연, <시옷의 세계>, 146p
지금 내 일상.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많다. 2-3시간은 없는데 틈새로 20-30분은 많다. 이 틈을 가득 메우는 유튜브. 20-30분짜리 재미있는 클립이 무한대로 무제한 LTE 요금제를 타고 손에 손 잡고 나에게 도착한다. 빠니, 곽투브, 원지, 유병재, 침투부 영상은 다 본 것 같다. 모유 수유를 시작하면 10-15분(x2)은 그대로 멈춰라 상태라 눈만 껌뻑껌뻑 하거나 젖 먹는 아기를 경이롭다 생각하면서 바라봤다. 그것도 하루이틀, 매일 수유하는 시간이 6시간이 넘어 그 시간이 싱거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하루에 7시간 이상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 문장을 읽다가 심심함을 환대하지 못하고 물리치거나 견디고 있는 나를 인식했다. 심심한 시간 누려야 하는데. 분명 이 심심한 시간 그리워질 텐데. 오늘은 책을 읽다가 건강한 심심함에 대해 생각했다.
10월 12일 목요일
곧 잘 먼 곳을 바라본다. 언제나 가시거리의 최대치에 시선을 둔다.
_ 김소연, <시옷의 세계>, 136p
시력이 부쩍 나빠졌다. TV 자막을 읽는데 찡그리면서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가시거리의 최대치는 깡그리 무시하고 살고 있었네. 책을 읽다가 시력에 대해 생각한 오늘의 독서.
10월 13일 금요일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해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_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5p
어렵고, 괴롭고, 지치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왜 그럴까요? 이 문장을 읽다가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를 처음 접하고 방학 때 매일 사전을 잡고 3-4시간씩 공부했던 것이 생각나요. 그때도 그랬는데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안에서 삐약 거리며 발전하는 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극복이나 발전을 느낄 상황이 많지 않은데 글쓰기는 이런 어른의 삶에도 어린이가 느낄 법한 부끄러움이나 발전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글쓰기가 좋은가 봅니다. 저도 글쓰기에 마음을 뺏길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