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11월 06일 월요일
내 슬픔을 그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제풀에 지치고, 그걸 말 안 하면 모르나 하고 서러워하다가, 말해도 모르는데 말 안 하면 더 모른다는 깨우침을 얻고서,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 마음 나부터 알아주자는 데 이른 어른스러운 해결책이 내겐 글쓰기다.
_ 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7-8페이지
21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2년 되었다. 우연히 사적인 서점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다. (무려 희희님의 수업!) 그전에는 일기를 쓰거나, 백지에 내 안의 쌓인 말을 털어내는 행위에 그쳤다. 살풀이나 고민 상담 같은 것. 희희님이 운전하는 배를 타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글쓰기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왜? 없이도 잘 살았었는데. 은유 작가님의 이 문장을 보다가 힌트를 얻었다. 글쓰기가 슬픔이나 외로움을 원료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 21년 여름과 가을, 나는 깊은 슬픔의 웅덩이 안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뱃속의 아기를 먼 곳으로 보내주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삶의 입맛을 잃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슬픔을 그래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내 마음 나부터 알아주자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전의 삶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적었다. 글쓰기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슬픔과 외로움이 넉넉해져서 글쓰기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마음을 붙잡고 쓴다. 덜 슬프고 덜 외롭다.
11월 07일 화요일
소통. 진심으로 우리에게 소통이 가능하려면, 삶 자체가 비슷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사는 이는 외국인과 같다. 삶만이 우리를 연결할 수 있다.
_ 김소연, <시옷의 세계>, 212페이지
좋아하는 친구인데 멀어져 버렸다. 수영이. 내 고등학교 단짝. 우리 둘이 교복 입고 목동 아이스링크 참 많이 갔는데. (우리는 아이스하키 선수 오빠들을 좋아했다.) 고3 때 반이 달라도 야자 하면 교복치마에 체육복 바지 겹쳐 입고 한솥도시락 먹으면서 낄낄거렸는데. 그렇게 평생 밥알 튀겨가며 수다 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런 친구가 한 둘이 아니다.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두 손 잡고 지낸 친구들. 모두 외국인처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문장을 읽다가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 내 삶이 있을 테니까.
11월 08일 수요일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성장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단계로 구분했다. 낙타는 의심 없이 주어진 짐을 지고 가는 수동의 정신을, 사자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고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선언하는 부정의 정신을, 어린아이는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 기쁨, 긍정의 정신을 상징한다.
_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2p
사자로 태어났다.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과 동그란 얼굴, 순한 말투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내가 낙타인 줄 안다. 40년간 사람들이 낙타라고 하니까, 낙타라 참 다행이라고 계속 말하니까, 점점 낙타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낙타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다 죽어가던 사자와 어린아이가 구해달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잊었냐고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11월 09일 목요일
어쨌든 지금은 나라는 편집자여서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백 명의 편집자 중 한 명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어요.
_ 김보희, <첫 책 만드는 법>, 181페이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인이 될 것인가, 이 고민을 42살에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직도 이 넓은 세상에 어디가 내 자리인 줄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책을 읽다가 보희 님의 이 말에 멈춰서 한참을 생각했다. 내 역할은 뭘까. 그리고 기원했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가고 싶다. 그 길. 느리더라도 확실한 걸음으로!
11월 10일 금요일
책만큼 한 시기가 정리되는 것은 없더라고요.
_ 김보희, <첫 책 만드는 법> 북토크 중
보희 님은 <첫 책 만드는 법>이 편집자로서의 한 시절을 정리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말을 했다. 사적인 서점의 대표 지혜님도 자신의 책을 들어 보이며 맞다고 했다. 책(에세이)을 쓰려면 그 시절의 모든 것을 펴 놓고 돌아볼 수밖에 없는 과정이니 그렇겠구나, 책을 쓰는 것에 저런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난임라이프를 겪고 그 경험으로 만든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기 전이다. 개발사 대표님이 내 이야기를 사용하실 분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게 한 달 전인데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고 좀처럼 쓸 수가 없었다.
어제 희희님이 보고 싶어 갔던 북토크였는데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고 왔다.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용기가 없다는 것. 내 경험이야 특별한 것이 아니고 더 한 것도 경험하신 분들이 많다. 책이 아니라 글로라도 이런 것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마케팅을 위해 쓰면 좋겠다는 말은 더 동기부여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한 시절을 정리하는 것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경험을 했고 무슨 필요를 느껴서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정리하고 싶다. 2019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4년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