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스물세 번째 집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집이기를... 대화동만큼은 아니라도 2년마다 혹은 2년도 되기 전에 짐을 싸는 일이 힘에 부쳤다. 초로의 우리를 대하는 부동산 중개사의 표정과 말투에서 "어찌 아직도 떠돌아다니실까?"가 느껴져 나는 하마터면 "우리도 집을 갖은 적이 있었어요."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할 뻔했다.
정발산동의 상가주택 2층이다. 1층은 미용실과 CCTV며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가게가 나란히 있고, 2층에는 내부구조가 다른 셋집 두 가구가, 3층은 건물주가 살았다. 201호는 주인과 가게들과 공유하는 건물의 정문을 통해 올라가면 되고, 202호는 미용실 옆 주차장을 지나 그 뒤쪽에 있는 작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계단으로 오르면 나왔다. 우리가 본 집은 202호였다.
상가 옆 주차장 뒤편으로 돌아 계단을 오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이 우리 식구만 쓸 수 있는 출입구가 있는 것은 좋았다. 방 셋에 부엌과 거실이 나누어져 있고, 세탁기를 둘 수 있는 작은 베란다도 있었다. 화장실이 삼각형이다. 설계상 네모로 나올 수 없었던 욕실의 한 면은 집의 외벽이기도 해서 겨울에는 무척 추웠다. 그래도 벽 중간에 큼직한 불투명 붙박이 큐브 유리벽을 넣어 바깥 밝기가 보이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그 벽의 높은 쪽에 여닫이 창이 있어 자연 환기도 됐다. 이 집에서 채광이 가장 좋은 곳은 화장실이었고, 그 외에는 낮에도 대부분 불을 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북향집은 처음이었다.
정발산동의 소박하고 오래된 상가주택 2층은 쓸고 닦을 일이 수두룩했다. 집을 보고 온 후, 남편은 결정을 못했다. 나는 어질러져 있던 전 세입자의 고단한 살림살이를 마음속에서 비워내고, 그 자리에 내 살림을 규모 있게 넣는 상상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 예산에 맞는 다른 집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말끔하지도 않고, 넓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이곳에 살게 되어 남편은 미안해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방과 살림들의 크기를 재면서 여러 번 그림 그렸던 대로 이삿짐을 야무지게 넣었다. 그러나 줄이고 줄인 책들마저 집 안으로 모두 들어올 수 없어 책장을 계단 벽 쪽으로 차례로 붙여 세우고 책을 꽂았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려면 책장 몇 개를 지나쳐야 했다. 나는 여러 차례 청소하며 조명도 바꾸고,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천으로 재봉질해 커튼도 만들어 내 취향의 인테리어를 했다. 남편에게 두 가지 이사선물을 받았다. 간신히 넣은 베란다의 세탁기 위로 ‘빨래 건조기’를 올렸고, 작은 부엌에 ’인덕션‘을 설치했다. 우리는 겨울에 따스하게 지내도 가스비가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집의 장점만 생각하기로 했다.
반려견 모카와 보낸 꿈같은 10년 중 이 집에서 6년을 함께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동네 공원을 비롯해서 육교를 건너면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정발산 공원의 구석구석을 사랑했고 모카와 수없이 산책했다. 아이들이 차례로 유학과 독립과 입대로 곁을 떠난 빈자리를 꼬불꼬불 갈색털의 강아지가 그 눈빛과 자그마한 몸뚱이와 긴 다리와 짤뚱한 꼬리를 총동원해 채워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저녁녘 노을을 배경 삼아 남편의 손에 이끌려 마중 나온 내 사랑 모카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대화동의 10년은 전세 만기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풍동집 이후로는 달랐다. 그날이 지나가면 "휴우~" 안도하며 6년을 살았다. 남편에게 다시 국민임대아파트를 알아보자 채근했다. 아이들이 십 대였을 때, 다자녀 가점을 받아 당첨된 적이 있었지만 연주하는 아이들이 악기 연습에 매진해야 해서 입주하지 않았었다. 가점이 모두 사라진 지금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