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스물한 번째 집
눈이 오면 식구들은 바빠졌다. 농로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경사를 넘어 마당을 지나 현관에 이르기까지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모두 제설 삽과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두루 도는 이 날은 우리 '카라' (시베리안 허스키)도 함께 마음껏 뛰노는 그림 같은 날이 된다.
'카라'는 마당과 밭의 경계없이 뛰어다니고 심지어 얼어붙은 논 위에 쌓인 눈에서 뒹굴고 껑충대며 온몸으로 즐거워했다. 시베리아 설원에서 눈썰매를 끌던 조상을 둔 이 개가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순하고 순종적이라는 이유로 마구잡이 수입되어 우리 집까지 오게 된 사연은 많이 슬프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농사 사부이자 동네 소식통인 옆집 할머니가 앞 집 허스키가 새끼를 낳았다고 알려주었다. 또 며칠 지나서는 강아지들이 눈을 떴다고 아주 귀엽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강아지 구경을 갔다. 견사 안에는 새끼를 낳고도 으르렁대지 않는 순둥이 허스키의 배 안쪽을 가득 채운 꼬물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앞 집 마당 한쪽 구석으로 그 인형 같은 귀요미들을 보러 갔다. 어미의 젖이 모자랄 듯싶어 우유를 데워서 들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앞 집 아저씨가 큼직한 양동이를 들고 우리 마당으로 들어서더니 나와 보라고 소리쳤다. 양동이 안에는 아기 허스키 일곱 마리가 겹겹이 엉켜있었다. 어젯밤에 견사 문이 실수로 열리는 바람에 어미가 밖으로 나갔는데 그만 동네 사람들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어미를 잃은 아기 허스키들을 우리가 돌볼 수 있으면 모두 거저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마당에 있던 CCTV를 통해 아이들과 내가 쭈그리고 앉아 아기들을 구경하며 예뻐하는 것을 보았다며 새끼들을 몽땅 양동이에 담아 오신 거였다. 우리는 넙죽 아기들을 다 받았다.
우리 집 거실은 단번에 일곱 마리 강아지 보육실이 되었다. 목에는 각각 다른 색실을 묶어주고 그 색깔로 이름 삼았다. 아이들 포함 온 가족이 동원된 몇 주, 홈스쿨링의 일정은 뒤죽박죽 되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끼들을 돌보는 일은 수고로웠지만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 때문에 더 많이 웃고 예기치 못한 즐거운 순간이 이어졌다. 대형견의 아가들인 만큼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지니 거실에서 감당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잘 키워줄 지인들을 수소문해 차례차례 입양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 '빨강이'는 '카라' 되어 우리 집 마당을 지켰다. 그리고 조상들의 계절, 겨울이 마당에 찾아오면 카라는 온몸으로 얼마나 행복한 지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