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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대화동 농가주택

살던 집 시리즈 스물한 번째 집

by 조은미


스물한 번째 집에서 무려 9년 10개월 며칠을 살았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다 자랐다. 꿈처럼. 그리고 지금도 때때로 나는 대화동 농가주택 그곳에서 사는 꿈을 꾼다.


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후 여섯 달이 지나, 새로운 마을의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만 보내는 일상에서 뭔가 아쉽고 답답했다. '마당 있는 아담한 집'을 기대하고 부동산을 찾았는데, 중개사 아주머니는 일산 근교의 그림 같은 전원주택만 보여주었다. 그러나 가격도 위치도 집 자체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살던 아파트는 뒷 쪽으로 건물이 없어 넓게 펼쳐진 하늘과 논밭만 보였다. 우리의 산책로가 된 반듯한 농로를 걷다 보면 드문 드문 있는 농가를 지키라고 주인이 묶어놓은 누렁이들을 꼭 만났다. "워우, 어우. 짖지 마라. 짖지 마. 우리 그냥 지나가는 거야!"라고 했지만 그러면 개들은 더 짖었다.


그렇게 오가며 지나쳤던 집 하나가 전세 매물로 나왔다는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눈에 익은 곳이니 냉큼 달려 나가 알려준 집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살던 아파트의 전세 기한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이 농가주택을 놓칠 수 없어 셋집이 빠지기도 전에 덜컥 계약을 했다. 다행히 차질 없이 이사할 수 있었다.


붉은 벽돌 단층집이다. 길에서 적당히 경사진 둔턱으로 올라서면 흰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나무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 소박한 대문은 어른 가슴팍 정도 높이여서 닫혀있어도 안 쪽이 훤히 보였다. 몇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다져진 흙 마당 너머에는 현관이 보였고 몇 개의 나무 계단이 그 앞에 있었다. 마당과 구별되는 넉넉한 텃밭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집 대문이 닫힌 것을 본 적이 없다. 이삿날을 손꼽으며 몇 번이나 그 집 앞을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빛나는 초여름 6월 어느 날부터 우리는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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