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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화마을 홈스쿨

살던 집 시리즈 스무 번째 집

by 조은미

집은 팔았지만 첫 번째 내 집을 갖았던 기쁨의 여운이 남아있는 일산을 떠나지 못했다. 마침 입주가 시작되고 있는 새 아파트 단지에 세입자를 찾는 빈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갔다. 대화마을 단지 끝에 위치한 이 집은 뒷 베란다 쪽으로 논밭이 보였고 건물이 없어서 시원했다. 필로티 안쪽 출입문 근처 세찬 바람을 지나 9층에 오르면 새로운 보금자리가 나왔다. 최신 아파트답게 구조도 신선했고 모든 것이 깨끗해서인지 내 집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의 홈스쿨링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정해진 틀에서 나와 자유롭되 우리만의 원칙을 세우고 함께 공부하자며 출발하니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시간표를 유연하게 만들고 늘어난 자유시간을 창의적으로 꾸몄다. 공부 외의 시간에는 잔잔히 FM 클래식 방송을 들었다. 새 단지의 아파트에는 체육시설이 좋아서 또래의 홈스쿨러 친구들과 농구 레슨을 잠시 받기도 했고, 축구장 트랙을 돌며 함께 달리기도 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막내는 고양시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에 서 경기를 하기도 했고, 큰 아이는 신문을 읽던 중 다국적 기업 3M 에서 주최하는 "과학 경진 워크숍" 소개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껴 지원했다. 참가 동기를 에세이로 써서 보내면 정해진 인원을 뽑아 진행하는 캠프였는데 통과했다.


지난 집에서 홈스쿨을 막 시작하고 두어 달이 지났을 때 고양시 마을 신문사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더니, KBS 방송국에서 저녁뉴스 시간에 내보낼 영상을 찍자고 연락이 왔었다. 마침 3M 캠프생활을 추가해서 넣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의 일상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3M 캠프 마지막 날에 열린 대회에서 큰 아이가 대상을 타게 되니 방송팀이 더 좋아했다. 제목은 "홈스쿨,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였는데 예상치 못한 아이의 입상 덕분에 전체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비추어졌다.


아이들의 독서량과 놀이도 함께 늘어갔다. 고장 난 전자레인지를 분해하면서 놀고, 자동차 전시장에 찾아가 설명을 듣고 시승도 했다. 공부와 놀이의 경계가 애매했지만 호기심이 주도한 모든 활동을 즐거워했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며 청소와 빨래 등 익숙할수록 마음과 시간이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실천하며 배워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생활은 답답했다. 몇몇 아는 홈스쿨러 가정들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는 소식을 들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떠났으니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혜택을 누리자는 마음이 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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