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혹시 생애 마지막 집이 될까?

살던 집 시리즈 스물네 번째 집

by 조은미

LH 고양덕은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 아직도 꿈만 같다. 벌써 3년이 지났다. 나의 스물네 번째 집이고

사랑하는 엄마가 모르는 첫 번째 집이다.


스물세 번째 집인 정발산동에 살던 중, 주인 할머니가 전세에서 월세로 돌린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사하지 않고 그냥 월세살이를 시작했었다. 이따금씩 다음 집을 생가하며 내가 막막해하면, 남편은 늘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가 갈 곳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내 집 없이도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다 컸고 모두 제 일을 찾아서 차례로 독립해 나갔다.


스물네 번 집이 바뀐 세월을 돌아보았다. 아빠의 죽음 이후 풍비박산난 삶 속에서 버티고 살아낸 엄마와 우리 세 자매, 또 그들이 모두 엄마가 된 것, 허리 아픈 내가 삼 남매를 낳은 것, 사고당한 딸아이의 손가락 접합수술이 성공한 것, 십여 년 간 홈스쿨링하며 세 아이들이 모두 음악을 전공한 것, 큰 아들이 독일에서 가정을 꾸린 것 그리고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것, 힘들었지만 대체로 괜찮았고, 때때로 행복했던 수많은 날들이 집에서 집으로 채워졌다.


꾸준히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라는 동생의 말대로 공고가 날 때마다 신청해 왔는데 마침내 가장 간절했으나 거의 가능성은 없어 보이던 덕은지구의 예비입주자 추가모집 당첨 통지를 받았다. 신혼부부 특화단지로 처음 공고에는 신청 대상조차 아니었던 남편과 나는 입주를 포기한 몇몇 가구 덕분에 3년 전 10월 21일부터 신혼부부 특화단지 46형의 입주민이 되었다. 문득문득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너무 좋아! 꿈같아!"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도 꿈속에서는 이사 갈 집을 걱정하고 짐을 싸고, 살고 있는 집은 대화동 농가주택이나 정발산동 집이 나온다. 이상하다.


우리 46형은 친절하게도 주방에 냉장고 자리가 있어서 주방과 거실이 말끔했다. 크기 다른 방이 각각 하나씩이고 화장실도 하나인 단순한 구조이다. 이제 겨울에 떨며 씻지 않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볕이 잘 드는 동남향이라 식물을 키울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 인생의 방향표 역할을 했던 피아노를 둘 자리가 나오지가 않아 어쩔 수 없이 중고로 팔아야 했다. 친구와 이별한 듯 며칠 동안 한참 동안이나 가슴이 뻐근했다. 살림을 들여놓고 보니, 입주 전 사전점검 때보다 오히려 답답하지 않고 더 아늑하지만 이제는 단출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 살림을 둘러보며 빼낼 것이 없나 계속 살피는 중이다. 꾸준히 소유를 줄여 가다가 어느 날 과감하게 비워진 공간 안에 더 큰 평온을 담고 싶다. 이사를 다 마치고 꿈에서 엄마를 자주 보았다. 거실을 거닐 때 들리던 슬리퍼 소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다가 눈을 떴다. 엄마 꿈을 꾸는 동안에 엄마의 장례식이 생각나기를 여러 번 “엄마! 다시 살아난 거야? 안 죽은 거야? 너무 좋아! 그런 거야?” 엄마를 안으려 손을 휘젓다 깨면 눈물이 쏟아졌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입관 전에 곱게 누워있던 모습과 마지막 임종면회에서 보았던 의식 없이 입을 벌리고 눈 감고 있던 엄마가 번갈이 떠오른다. 우리가 집이 없는 것을 나보다 더 속상해하던 엄마가 떠나기 전에 궁금했던 곳이 바로 이 아파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대화마을 농가주택에서부터 풍동과 정발산동을 거쳐 이곳 임대 아파트까지 함께 이사 다녔던 갈색 푸들 우리 모카의 병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안락사를 용케 피해 우리 집 막내로 9년를 함께 보낸 조그마한 녀석이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모카는 엄마와 똑같이 심장병을 앓다가 떠나갔다.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오열하며 그 마지막을 받아들여야 했다. 새 집에서 모카는 추억을 쌓을 새가 없었다.


연이은 이별 후 서너 달 폭풍 같은 슬픔과 상실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모두 모두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러다 우연히 공장식 번식장에서 새끼 낳는 모견으로 학대당하다가 구조된 푸들의 소식을 SNS에서 보았다. ‘함께 걸을 개’라는 구조단체에 연락을 하고서 새로운 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유기견 모카와 함께 보냈던 이야기도 전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꼼꼼한 심사를 거쳐 흰색과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토이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평생 동안 뜬 장 위에서 새끼를 낳고 빼앗기기를 반복했던 어미개는 쉼 없는 출산으로 배는 처져있었고, 이는 빠져 몇 개 없었으며 성대수술이 된 상태였다. 산책을 하려고 하네스를 입히니 움직이지 못했는데, 예쁘다고 쓰다듬어 줄 때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배인 것을 알아챘다. 잔혹한 견생에 가장 편안했던 순간이 새끼를 먹이고 품던 때였다니… 가슴이 먹먹하다. 양처럼 털이 풍성하고 순한 강아지라서 이름을 ‘양순이’로 정했다. 이렇게 양순이는 우리 집 막내가 되어 정을 쌓아 가고 있다.


거실 벽의 작은 모니터로 실내 산소량을 알아챌 수 있어 환기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집을 나서면서 미리 엘리베이터도 부르는 여러 장치들이 있는 깔끔한 첨단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이사한 일 년 후에 독일에 있는 큰 아들이 교제했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딱 일 년 후에는 딸아이가 결혼을 했다. 딸아이는 지난여름에 아들을 낳았고, 아들내외는 이번 겨울에 역시 부모가 될 예정이다. 나는 이제 정말 찐 할머니가 되었다.


이사 다니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살고 싶은 집을 마음에 그린 적이 있다. 한강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고층 아파트도 아니고, 푸른 숲 속 산새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전원주택도 아니다. 나무 몇 그루가 주변에 있는 단단하게 지어진 아담한 빌라나 작은 주택을 따스하게 고쳐서 살고 싶었다. 취향대로 마음껏 꾸며도 되는 곳, 종종 담소하던 손님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하루 이틀 묵고 갈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집, 아들과 며느리와 딸과 사위 그리고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쉬고 갈 수 있는 집을 꿈꾼 적이 있다.


나의 인생을 관통한 다채로운 공간들은 격동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활기차게 역동하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르게 추락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살아계셨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집을 팔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은 의미 없다. 내가 살던 여러 모양의 집 속에는 풍요와 결핍과 눈물과 사랑과 기쁨과 이별과 새로운 생명이 담겼다.


입주 자격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2년마다 하는 계약 연장이 열다섯 번 가능하다는, 여기가 혹시 내 생애 마지막 집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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