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스물네 번째 집
작년 10월 LH 고양덕은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아직도 꿈만 같다. 스물네 번째 집이다. 스물세 번째 집의 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사하지 않고 월세살이를 시작했었다. 이따금씩 다음집은 어디가 될까 막막하고 슬퍼지는 날이면, 남편은 늘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집이 없어도 아이들은 다 컸고 제 일을 찾아서 차례로 독립해 나갔다.
스물네 번 집이 바뀐 세월을 돌아보았다. 아빠의 죽음 이후 풍비박산난 삶 속에서 버티고 살아낸 엄마와 우리 세 자매, 또 그들이 모두 엄마가 된 것, 허리 아픈 내가 삼 남매를 낳은 것, 사고당한 딸아이의 손가락 접합수술이 성공한 것, 십여 년 간 홈스쿨링하며 세 아이들이 모두 음악을 전공한 것, 그리고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것, 힘들었지만 대체로 괜찮았고 때때로 행복했던 수많은 날들이 집에서 집으로 채워졌다.
꾸준히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라는 동생의 말대로 공고가 날 때마다 신청해 왔는데 마침내 지난해, 가장 간절했으나 거의 가능성은 없던 덕은지구의 예비입주자 추가모집 당첨 통지를 받았다. 신혼부부 특화단지로 처음 공고에는 신청 대상조차 아니었던 남편과 나는 입주를 포기한 몇몇 가구 덕분에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신혼부부 특화단지 46형의 입주민이 되었다. 문득문득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너무 좋아! 꿈같아!" 혼잣말이 튀어나오는데 그럼에도 잠자리에서는 여전히 이사를 준비하고, 대화동 농가주택이며 정발산동에 살고 있는 꿈을 종종 꾼다. 이상하다.
우리의 46형은 친절하게도 주방에 냉장고 자리가 있어서 주방과 거실이 말끔했다. 크기 다른 방이 각각 하나씩이고 화장실도 하나인 단순한 구조이다. 이제 겨울에 떨며 씻지 않아도 되어 기쁘다. 다만 아이들 인생의 방향표 역할을 했던 피아노 둘 곳이 없어 중고매매로 피아노를 떠나보낼 때에는 마치 각별했던 친구와의 이별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이사를 마치고 보니 입주 전 사전점검 때보다 덜 답답하고 더 아늑하지만 이제는 단출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 살림을 둘러보며 빼낼 것이 없나 계속 살피는 중이다. 꾸준히 소유를 줄여가다 어느 날 과감하게 비워진 공간 안에 더 큰 평온을 담고 싶다. 나의 인생을 품었던 여러 모양의 집을 거치고 자리 잡은 곳, 입주자격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2년마다 하는 계약연장이 열다섯 번 가능하다는 그래서 최장 30년을 살 수 있는 여기가 혹시 내 생애 마지막 집이 될까? 그리고 이제는 나의 영원한 집, 스물다섯 번째를 기다리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