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Oct 03. 2020

에밀리의 일본어 식탁

3대의 중추절

나는 이대 독자 시아버님 댁 맏며느리다.

코로나로 솔직히 이번 명절은 피하고 싶었다.

하나 아무런 말씀도 없던 상태라...

일회용 그릇에 나무젓가락까지 챙겼었지만 ,

정작 모이고 보니 다 무용지물이 돼버렸던 이번 중추절.


어쨌든 그렇게 차례상을 차리고 ,

모인 형제 가족들의 아침, 점심이 끝난 뒤


원래의 생각은 나 혼자 조용히 오랜만의 산행을 간단히 하려던 것이었었으나 , 막내에게 권유한 것이 시작으로

결국 시아버님과 동서네 두 어린아이들 , 우리 가족 둘, 그렇게 다섯 명이 돼버린 시댁 뒤의 우면산 산행..


나의 취지는 이 좋은 가을 날을 버릴 수가 없어서였고 , 워낙 산을 좋아하시는 아버님께선 명절날 쉬시려던 산행을 손주들과 더불 어란 기쁨으로...

초등생 두 명은 어찌하지 못해 끌려 간 길이 되었고 , 우리 집 막내는 그 중간에서 사촌들 챙기랴 나 돌보랴....


우리 아버님은 박식하시다.

78세까지 외과 수술을 하실 만큼의 당신의 체력관리가 확실하신 분이시고..(실은 그래서 아버님의 손을 살펴보면 몇 손가락의 첫째 마디들이 굽어있다. 그 많은 수술 탓에..)

손주들과 가족들과의 대화 시에는 어김없는 질문 공세가 펼쳐지곤 한다.


이번 명절도 예외는 없었다.

첫째 질문은 식탁에서 ,

토란의 뜻에 관하여..


그리고 산행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비늘 같은 나뭇잎의 개수 비교를 시작으로 ,

코스모스의 영어적 , 포괄적 뜻에 관해,

또 도토리를 영어로 무엇이라 하는가 ,

사계절 푸르른 나무들을 통틀어 무엇이라 하는가 등등등..


아무튼 그렇게 우면산을 오랜만에 오르고 ,

산행이란 서두르는 게 아니라 쉬엄쉬엄 즐겨가며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까지 손주들에게 간식을 나눠주시며 설명하시는..

그래도 오랜만의 손주들과의 산행이 무척이나 기쁘심에 틈 없는 표정이셨다.

(거슬러 일본서 귀국뒤 사오년은 격주로 친손주 둘과 외손주 둘 을 이끌고 북한산을 가시던 할아버지셨었다 )


내려오는 길엔 , 갑자기 옆길로 들어서셔서  내가 40대에 다니던 우면산에서 처음 가보는 난이도 상의 가파른 바위길을...


'아버님 , 다음부터 절대로 이 길은 혼자 다니지 마셔요!'

내가 다짐에 다짐을 하며 내려왔더라는..


젊은 시절부터 산을 타신 분이시긴 하지만 88세의 나이에는 적당히 타협도 하셔야지 싶기도 한...

아무튼 나 역시 시아버님 뒤를 따라 가 본지가 꽤 됐지만 ,

어느새 많이 속도가 떨어지셨구나 싶으면서도 , 사실인즉 그 연세에 비하면 십 년은 젊으신 체력이지 싶다.


그렇게 명절의 낮시간은 맑은 가을 하늘과 공기를 , 비록 마스크 안에서지만 맡아보았던 코로나 시기의 중추절이 흘러갔다.

이번 식탁에서의 최고는 육전과 야채 무침이라고 시어머님께서 한 마디 거드셨던 저녁 식탁을 마무리했고 ,

거리 유지 , 코로나 주의는 삼대가 모인 시댁 안에서는 결국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시간이 흐른 뒤 그 날의 산행이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길 바랄 뿐이다.

개성식 ( 시어머님께 배운 ) 오이삐뚜리

개성식 무토란국사진을 찍질못한채

늦둥이 젤 어린 친손주와 바둑으로 마무리 하신 명절

명절 뒷날은 육전 비빔밥과 맑은 콩나물국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에밀리의 소셜 쿠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