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힘껏 차올린 축구공이 파란 하늘을 향해 높이 떠올랐다. 축구골대를 향해 종횡무진하는 대여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날쌘 몸동작이 떠오른 축구공만큼이나 들떠 있고 신났다. 초등학교 운동장,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드높았다. 늦가을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의 모교 초등학교에 왔다.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니 어릴 때처럼 크고 넓지 않았다. 흐른 세월만큼 커다란 것들에 익숙해진 어른의 눈에 그랬다. 앉은 곳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도서관도 작았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나의 어릴 적 도서관, 지금은 오래되고 빛바랜 건물이 되어 ‘향토 사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릴 땐 그 도서관도 지금처럼 아담하고 작은지 몰랐다. 흰색 시멘트 슬래브 지붕을 하고 빨간 벽돌로 사면을 두른 나지막한 단층 건물, 내 꿈이 자란 곳이었다.
그 당시엔 우리들 집과는 다른 최신식 건물이었다. 우리 고향 출신이며 미국에 살고 있는 성공한 실업가가 지어준 것이라고 어른들은 그분을 칭송하며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들었다. 오늘날처럼 도서관이 많은 시대도 아니어서 새롭게 들어선 도서관은 내 눈과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 현판이 출입문 위 벽에 걸렸다. 교장 선생님은 도서관을 지어주신 분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책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조회시간에 훈화하셨고, 새로 오신 사서 선생님을 소개하셨다. 마음이 따뜻해 보이는 예쁜 여선생님이셨다.
담임선생님을 따라 호기심과 기대감에 들떠 반 친구들과 도서관에 들어섰다. 출입문을 열자 책장 가득 꽂힌 새 책들이 맨 처음 눈을 사로잡았다. 이어 코끝에 스미는 싱그러운 책 잉크 냄새, 칸막이 가득한 넓고 긴 책상을 보며 매일 와 책을 읽고 싶은 열망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도서부원을 뽑는다고 했을 때, 수줍기만 했던 내가 주저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서부원이 되어 방과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 사서 선생님의 일을 도와 드렸다.
그때 읽었던 지금도 기억나는 책들 - 신데렐라, 백설 공주, 소공자, 소공녀, 헨젤과 그레텔,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밧드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톰 소여의 모험, 헉클베리 핀의 모험, 플란다스의 개, 빨강머리 앤, 왕자와 거지, 아라비안나이트, 비밀의 화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심청전, 흥부 놀부전, 콩쥐 팥쥐, 이원수 동화집과 위인전 - 을 섭렵하며 나의 마음과 생각은 충만했고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상상의 나래를 펴 아름다운 꿈을 꾸며, 착한 마음을 지닌 훌륭한 사람으로 크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도 키웠다.
실제 체험할 수 없는 세계를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하며, 주인공의 마음과 생각에 감정 이입되어 삶의 기쁨과 슬픔도 느꼈다. 그러면서 마음은 넓어지고 생각이 다양해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나이대로 수용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 권선징악과 고생 끝에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그 시절 내 생활의 윤리와 도덕관을 형성했다.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픈 내면의 의식을 깨우며 사람이 천박해지고 추해지는 악한 심성을 제어하고 절제할 수 있는 힘,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 사물과 현상, 상황을 이성적 사고로 판단하여 유연하게 결단력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그 바탕을 이루어 주었다. 정신적인 성장과 함께 인생을 살아갈 힘의 기초를 다져 주었다.
그러니 도서관을 선물로 주신 독지가 분이 존경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먼 외국에 사시며 인적자원밖에 없는 모국을 사랑해 인재 양성을 중시하고 학교 도서관 건립을 결정하셨으리라. 자라는 세대가 책을 읽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나라를 발전시켜 주길 바라는 염원, 그분이 백년대계 교육에 건 기대고 타국에서 품은 희망 아니었을까. 그분의 바람대로 나라는 발전했고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좋은 내용의 책은 사람의 정신에 바른 가치를 심고 꿈과 비전을 발견하게 하며 개인을 성장하게 한다. 나아가 충만한 인생으로 이끌며 사회와 나라를 건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