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작한 그림
내 그림 나이는 이제 5살이다. 그림을 꾸준히 그리기 시작한게 둘째가 태어날쯤 부터라 둘째 아이의 나이가 내 그림 나이라 생각한다. 5살 딸아이는 친구들과 노는걸 좋아하고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잘 안되면 으앙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림을 생각하면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내 그림도 자랐다. 내 그림은 이제 친구도 생겼고,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럼에도 자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도 든다. 그건 아이도 나도 5살은 처음이기 때문이겠지.
재왕절개로 두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예정일이 ‘정확히’ 지정되어 있었다. 재왕절개의 이유는 말하자면 간단한데, 또 구구절절하여 생략하겠다.(다음에 말 할 기회가 있을지도) 둘째 출산준비를 위해 한달 전부터 친정에 머물렀다. 친정 엄마는 첫 손주인 큰 아이를 잘 챙겨주셨다. 만삭 임산부인 나는 친정에서 맘편히 놀고 마음의 여유도 되찾았다. 도착해서 이주간은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필요한 것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기 이주일전,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주한 현실은 지금 친정에는 아무런 재료가 없고, 그리고 2주 뒤에는 둘째가 나온다는 것이다.
내 집에는 이미 붓과 물감이 있다. 그게 왜 있냐? 나의 오랜 로망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좋아하던 꼬마는 그 길말고 적당히 공부를 해서 공대생이 되었다. 공순이로 10년을 살았는데, 늘 내가 좋아하던 그림으로 힐링을 하려고 배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시 퇴근을 꿈 꿀수 없던 직장인에게 취미 생활은 지속 불가능한 일탈이었다. 피로감과 구순염. 이거 내가 고3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마저도 야근으로 결석을 해야되는 일이 생기고, 결국 중단했던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다.
“남편, 나 튼튼이 나오기전에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어. 태어나면 더 그릴 여유가 없을거잖아. 이번주에 올때 물감이랑 붓이랑 들고 와주라.” 말은 했지만, 기다릴 수 없다. 출산을 2주 앞둔 그 시점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금쪽같고, 귀한지 참을 수가 없다. 내게 있지만, 지금은 없는 그 물감과 붓과 스케치북을 결국 주문했다. 그리고 그렸다.
늘 커다란 스케치북에 그렸는데 2017년에는 손바닥만한 미니 스케치북을 샀다. 집에서도 신속하게 그리고 접어야 하는 내게 미니팔레트, 미니스케치북, 숏핸들의 붓은 기동력을 높여 주었다. 한껏 불러온 배에 불편하게 기대 앉아 그린 첫번째 그림이다. 친구와 함께 다녀온 멕시칸 요리집. 가끔 전에 그린 그림들을 넘겨보기도 하는데, 그 때의 그림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크게 성장하지 못한것을 아쉬워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고 정신승리를 해봐야 하는걸까 어려운 문제다.
두번째 그림은 어반스케치를 해봤다. 내 인생에도 현장에서 스케치를 하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했다. 그날의 메모에 만삭 임산부의 고충이 느껴진다.
“ 하루하루가 다른몸. 허리통증. 엄마가 큰아이와 수업을 갔고 나는 밖에 앉아서 스케치를 한다. 민초 한잔 어쩌고 “
오~ 무려 4년전의 민초단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3점의 그림을 그렸다. 작은 스케치북에 시작한 그림이 재미있었다. 둘째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찍은 사진을 보고 아이를 그렸다. 이런 그림들을 보면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추억을 각인했구나. 그 일의 가치를 시간이 지난 후 스스로 발견한다. 집에 가면 못그릴것 같다는 생각에 조리원에서도 몇점을 더 그렸다. 그렇게 그려온게 아이 나이처럼 49개월이다. 내 그림 나이 5살. 좋아하던 것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내 마음이 시킨 일이 신기하다. 아이가 나면서 내 그림 인생도 태어나 같이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한 걸음씩을 옮기면서, 나는 믿게 된다. 마음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구나. 때때로 알림을 울려준다. 언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는 내가 할 일이겠지.
매거진 제목과 함께 나타나는 커버 이미지는 바로 오늘 그린 따끈한 그림이다. 그림도 달라지고, 재료도 다양하게 쓰고 있지만, 변함없는것은 여전히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 오래오래 그리고 쓸 사람의 첫 브런치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