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걸까
찬찬히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해온 일들. 내가 지나온 시간들. 분명히 의미 있고 값진 경험들이 많은데 세상 앞에 나를 내놓기가 두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야 하는데 나는 남겨둔 기록이 없다.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어서 제대로 키운 SNS 계정이 하나 없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절대 절대 절대 지우지 않기로 다짐한다.
지속하지 못하는 나에게 다시 실망하지 않도록.
면접에서 나를 증명해야 하니. 내가 회사에 기여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나의 기여도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어떤 자격증이 있는지. 등등. 돌아보게 된다. 회사란 목적이 있는 곳이고 회사에 기여할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이는 정보나 수치로 나를 증명하는 게 맞고 그래야 한다.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거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의 내가 아닌 나 자체를 돌아보고 싶다.
대학 졸업 후부터 생각해야 할까. 아 아니다. 이것도 회사에 지원하기 위한 기준일까. 난 어떤 것들을 해왔을까. 기억 속에 남겨진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기로 하자. 시기별로 나눠야 하나. 나이대로 나눠볼까.
키워드 : 책임감, 포기한 기억
내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뭘까.
부모님은 어린 시절 필름 카메라로 추억을 많이 남겨주셨다. 내 기억 속에는 없어도 사진으로 짐작하는 어린 시절이 많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사실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난 동생과 6살 차이가 난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셨고 식당 옆에 딸린 집에서 살았다. 부모님이 바쁘실 때 동생을 돌보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업어주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항상 손을 잡고 다니며 챙기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책임감이라는 걸 배웠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어렸고 돌보는 게 서툴렀겠지만 나름대로는 부모님을 돕고 싶은 마음에 내 기준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동생을 돌보았던 것 같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유치원 시절까지 가족과 함께한 내 어린 시절이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고 피아노 학원에 다닌 기억이 나는데 악보 보기를 어려워해서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 보냈던 기억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 정신이 아픈 아이가 나를 괴롭혔던 기억도 난다.
키워드 : 학급 대표, 책임감, 트라우마
그리고 어릴 때부터 키가 컸고 뭐든지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하는 아이였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고 원래 성향이 그런 것 같다. 내가 주어진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선생님들의 눈에 잘 띄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가만히 있어도 선생님이 좋게 봐주었는지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니 시키기 좋은 아이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님이 시켜서 대표로 앞에 나가서 시범을 보이는 일이 많았고 행사나 학예회에서도 가장 앞에 서고 합창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나를 추천하기도 해서 임원 후보에 나가서 반장, 회장이 되었고 6년 내내 학급 임원을 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했던 기억은 없고 주변에서 시켜주니 자연스럽게 해 왔던 기억이 있다.
타의로 책임감을 기르게 된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내가 원해서 했던 기억이 없다는 게 오히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교내외 대회에서 글쓰기나 그림으로 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고 따르기도 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건 엄마의 칭찬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다.
글라이더 날리기 대상을 받았을 때는 '글라이더는 엄마가 잘 만들어서 그런거지' 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고
미술시간에 인물을 정해서 따라 그리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그림 잘 그려서 선생님께 칭찬을 듣고 좋은 점수를 받아 자랑을 했을때도 엄마는 '따라 그리는 것만 잘하면 뭐하니 창의력이 있어야지'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 때 였을까 나무를 처음 그렸던 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린 나무를 보고 나무는 그렇게 그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그리는거라며 내 앞에서 오히려 엄마의 그림 실력을 뽑내곤 하셨다.)
그리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당연히 동생도 많이 돌보고 매일 방과 후 일과로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고 있는 동생을 깨워서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했었다. 어린이집에서 약간 분유 냄새? 기저귀 냄새? 같이 아이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항상 학교를 일찍 가서 시간이 남으니 수업 시간 전에 운동장에 있는 하늘사다리 꼭대기에 앉아 있곤 했는데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아찔한 트라우마가 생긴 기억은 내용이 길어져서 다른 글에서 써보려 한다.
키워드 : 소심함, 내성적, 공부
중학교 시절엔 음, 소심한 내 성향이 최고조에 이렀던 것 같다. 중2병이 왔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남녀공학을 다녔고,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나름 잘해서 임원은 3년 동안 했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공부 잘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언니와 2살 터울로 1년간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언니가 공부를 잘했고 방송반에서 아나운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년에서 인기가 많았다. 항상 언니와 나를 비교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언니를 아는 선생님들도 언니와 나를 비교했다.
그러다 나도 자연스럽게 방송반 오디션을 보고 방송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업에 방해가 될 것 같다며 내가 방송반을 그만두는 걸 권유하셨었다. 그래서 방송반은 1년 만 하고 계속하진 못했던 것 같은데 수동적인 나란 아이는 참 그때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방송반을 그만두었던 기억이 난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굳어진 시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엔 특히 내 행동에 자신감이 없었던 기억이다. 여드름도 많이 나고 외모 흑역사 시절이었다. 그리고 난 말수가 적었고 지금도 그렇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가정에서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니 지금도 대화에 서투르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고 어른들이 공부를 하라고 하니 공부를 했었다.
열심히 했던가? 그런 기억은 없다.
학교에서 말수가 적었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나는 것 같고 시키는대로 잘하는 나를 선생님들은 좋아했지만 친구들이랑 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는 잘 지냈었는데 다 각자 찐친? 한두 명을 만들던 시기에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해져서 친한 친구를 잃었던 기억도 있다. 그 다른 친구는 나와 친구사이를 질투해서 이간질했다. 맨날 붙어 다니던 친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애랑 놀았는데 그때 상실감이 꽤 컸던 기억이 난다.
키워드: 목표의 부재, 영어
고등학교 시절에는 목표가 없는 게 문제였다. 수능 자체가 목표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나에겐 먼 얘기였다. 공부머리가 없는 건 아니었던게 성적 순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능 대비반에 들어 갔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항상 불만만 많은 학생이었다. 사춘기가 고등학생 때 온걸까.
목표도 없고 의욕이 없으니 관심 있는 과목만 성적이 좋고 나머지는 내가 도대체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다. 저 선생님은 꼭 저렇게 가르쳐야 했을까. 이런 걸 도대체 왜 배워야 하나. 국어는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역사는 알아서 뭐하나. 괜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댔던 걸까. 잘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목표가 없었다는 거다.
가고 싶은 대학교나 학과가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내 속사정도 모르고 치과의사가 되길 원하셨다. 되지도 않은 목표가 타인에 의해 주어지니 있던 의욕도 떨어졌다.
그나마 외우지 않아도 되는 과학과 영어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특히 영어 점수가 잘 나와서 영어를 가장 좋아했다. 영어 점수로 대학교 갔으니 말 다했다.
그래서 난 통번역학과를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엄마는 통번역은 가장 빨리 없어질 직업이라며 내 의욕을 바로 꺾으셨다. 엄마에 의해 꺾인 의욕이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의 꿈을 접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는 뭐든 안된다고 했다.
내가 하는 말에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공감이나 동의를 얻어 본 적이 없다. 다 안된단다. 그냥 공부만 하란다. 도대체 이건 어떤 교육 방식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친구 관계는 조용하게 원만했던 것 같다. 왁자지껄 모여서 놀기보다는 소수의 친구들과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 지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소심해서 다가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말 한마디도 걸지 못할 정도로 소심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1년 내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